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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연다. 호령하던 입술이 복종하듯 닫혀 있다. 부러진 입꼬리에서 패잔병처럼 노래가 흘러나온다. 후렴마다 억양이 바뀌고 있다. 입이 가장 먼 발을 다 부르면 입술은 얼굴 밖으로 버려지고 무표정은 완성될 것이다. 누군가 내 입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내 전쟁사는 발굴될 수 없다.
선비들의 다감한 유물 중에는 필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열어보니 주인의 '침묵'이 몇 자루 몽당연필이 되어 누워 있습니다. 그 '침묵'을 열어보니 거기 한때의 '호령'도 있습니다만 그저 부러진 연필심일 뿐입니다. '펜은 칼보다 힘이 세다'는 말은 거짓이거나 서글픈 말입니다. 너무나 늦게 힘이 세죠. 너무 늦은 힘은 힘이 아니라 회한(悔恨)이기 쉽습니다. 참으로 조그만 물건, '필통'에서 '전쟁사'까지를 유추하는 소회가 가슴에 엉겨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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