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이태현 前 전북 안전정책관 | | ⓒ 익산신문 | | 1982. 12. 1일 군에 입대하여 한 달간의 신병훈련을 마치고 대구에 있는 공군부대에 배치 받았다. 부대에 적응이 되기도 전에 고참 병장이 제대 하면서 한 말이 “바라본 3년은 길었는데 뒤돌아 본 3년은 짧았다”라고 하였다. 필자 역시 그렇다. 뒤돌아보니 32년 이라는 공직생활이 참 짧았고 화살 같았다.
20대 후반인 1987년 7월 10일 청운의 꿈을 안고 9급 공무원으로 정읍군청에 임용되었다. 그 당시는 공무원이 인기가 있던 직업은 아니었다. 때문에 경쟁률도 아주 낮았다.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만 32년간의 공직생활을 올 6월말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이 순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고 말한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오른다.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그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이것저것 사소한 것에 마음을 뺏겨 정작 중요한 것은 소홀히 한 인생의 비의(悲意)를 농담처럼 표현한 말이지만, 혹시 필자도 그러지 않았나 하고 지난 32년 공직생활을 뒤돌아 봤다.
그동안 공직생활 아무 탈 없이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같이 근무했던 선배공무원과 동료 그리고 후배 공무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기회를 빌어 감사를 드린다.
사람은 떠날 때는 미련 없이 떠나야한다고 하지만, 어찌 미련이 없겠는가. 1987년 7월 공무원에 임용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나오면서 희로애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돌이켜 보면 아름답고 보람 있는 일로 흥분에 들뜬 날들도 있었고, 어떤 때는 격랑과 고뇌와 실망에 부딪치기도 했지만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길이기에 끝까지 지키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또 아침에 출근을 하면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까? 하고, 기다려지기도 했었다. 때론 기쁜 일이 있으면 기쁜 일대로 좋고, 어렵거나 나쁜 일이 있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며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기도 했었다. 물론 그 길엔 동료여러분의 사랑이 큰 힘이 되었다.
32년 동안 대부분 전북도청에서 근무했었지만 그 기간 중 부안군 변산면장과 무주군 부군수로 재직했던 3년여 기간이 기억에 남는다.
정년퇴직은 하루에 밤이 오고, 한 해에 겨울이 오는 것처럼 피할 수 없는 철칙이다. 예정된 이별이지만, 정들었던 직장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큰 아쉬움이 남는다.
‘청춘’ 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라고. UN에서도 청년의 정의를 18세부터 65세라고 했다. 지금은 100세 인생, 퇴직 후에도 30년 내지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퇴직 후에도 이상과 열정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야 인생이 늙지 않고 익어간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무원이든 회사원이든 현직에 있을 때 퇴직을 대비해서 준비해 놓을 게 있다. 첫째로, 재직 중에 나만의 전문분야 하나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동안 두 번의 연금법 개정으로 10년차나 신규공무원은 연금이 1/2 또는 1/3로 줄었다. 신규공무원들은 국민연금 수준이다. 그러므로 퇴직과 동시에 재취업 할 수 있도록 재직 중에 라이센스 즉, 면허증이나 자격증을 취득하여 가치 상승을 시켜 놓아야 한다.
둘째로, 재직 중에 자신만의 장기, 특기, 취미 등 재능을 개발해야 한다. 즉 골프, 수영 등 운동과 악기, 노래, 서예, 글쓰기 등 재능기부 할 수 있는 장기를 갖춰 놓아야 한다. 퇴직 후에 시작하면 하면 몸이 굳어 쉽게 늘지 않는다. 취미가 없다고 퇴직 후에 매일 산에만 오를 수는 없는 일이다.
정년퇴직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가려고 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그동안 가고 싶었지만 여러 제약으로 가지 못했던 곳을 기한 없이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또 책을 읽으며 간혹 글을 쓰고, 골프와 산을 오르며 체력을 단련하여 인생 제2막을 멋지게 펼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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