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정성수 시인 | | ⓒ 익산신문 | | 봄이 되어 새싹들이 고개를 들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윤기 흐르는 나뭇잎들을 보면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을 물씬 느끼기도 한다.
어느 때는 꽃샘추위에 생장을 멈춘 것 같아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뭇잎들은 가지에 붙어서 삶을 유지해 간다. 삶이란 단순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봄 가운데에서는 벚꽃이, 유월이 되면 장미가 제일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요즘 세상을 살아가면서 벚꽃도 장미도 한때라는 것을 절감한다. 피는 날 며칠이지만 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뿐만 아니라 꽃이 필 때 화려함 보다 질 때의 모습은 추하기도 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절이 누군들 없었겠는가마는 자신을 한번쯤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길가에 벚꽃이 피고 울타리 밖으로 장미가 삐죽 고개를 내민 그때 그 시절 고향이 그립다. 그러나 아련한 시절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현실적으로 팍팍한 삶은 꽃을 봐도 무덤덤할 뿐이다. 감동이나 감흥은 남 이야기가 됐다.
꽃 진자리를 오랫동안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것은 흉터 같은 고통의 시간을 만지는 일이었다. 고통을 내부로 가두었다 꺼낸 무늬와도 같았다. 나와 자연의 합일이 될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무극과 무한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묻는다.
인생은 나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나름의 계절을 살아간다. 청춘의 봄은 환호였다가 때가 되면 흔적도 없이 소멸한다.
그중에서도 젊음의 꽃은 벚꽃처럼, 장미처럼 피어 자태를 뽐낸다. 그 꽃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자신들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도록 한다. 그런가하면 벌과 나비들을 불러들여 붙들어 놓는다.
그러나 꽃들의 아름다운 자태는 오래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꽃 지는 일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한번 지고 난 꽃들에게 벌 나비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것이다.
아무리 아름답던 꽃들이라고 할지라도 시들면 색깔이 변하고 추할뿐만 아니라 벌레들이 생기어 여기저기 상처가 난다. 거기다가 땅에 떨어진 꽃들은 오가는 발에 무참히 밟힌다.
만물은 때가 있다. 때에 순응한 삶을 살면 아름답다.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시들은 꽃을 보면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겸손은 '꽃이 진자리에서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이다’ 꽃이 피고 지는 고통 뒤의 열매야말로 달고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도 꽃들이 시들어 지고 마는 계절의 순환이라는 것을 안다면 결코 슬프지는 않을 것이다.
말씀에 ‘천하의 범사에는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은 이룰 때가 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은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을 때가 있고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고 했다. 이는 창조의 질서에 순응해야 하는 것처럼 사람은 자연에 순응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봄꽃들과 만남은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찰의 시간을 갖는 시간이다. 벚꽃이나 장미를 통해 희망이 무엇인지 희망은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과 날들만큼 자리를 지키다가 때가 되면 소리 없이 떠나가는 꽃들을 보며 자연의 질서에 머리를 숙인다.
인간들은 오래세월을 만나면서도 끝내는 서로 등을 돌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꽃들과 이별은 아쉬우면서도 담백한 여운이 짙다.
내가 먼저 마음을 닫고 보낸 사람이나, 나를 미워하며 떠난 사람들이 한순간 연민으로 다가온다. 내 가슴에 남은 미움과 원망과 억울함과 화해하고 나아가 나를 용서하는 시간이야말로 빛나는 순간이다.
누구나 젊었을 때에는 주위에 사람이 많다. 그러나 늙으면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기 시작한다. 비로소 그때 슬픔을 알게 된다. 사람 사는 세상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또 다른 열매를 맺기 위해 삶을 내려놓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꼭 서글픈 것만은 아니다. 삶은 절망이 아닌 희망이며 때가 되면 그 자리에 풍성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맺힌다. 꽃이 열매를 남기듯 누군가 떠난 자리에도 분명 열매 같은 무엇인가 남는다.
꽃이 진다고 아쉬어마라. 꽃 진 자리에 열매가 있다. 설령 열매가 아닐 지라도 가슴 먹먹하게 하는 그리움 같은 것은 아닐는지? 이것을 인생의 행복이라고 하자. 그 행복을 위해 꽃도 하르르 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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