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정성수 시인 | | ⓒ 익산신문 | | 요즘 희망적인 뉴스보다는 절망스러운 뉴스가 더 많다고 한다. 절망적인 뉴스를 들을 때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과연 희망은 없는가? 자문을 하면서 자괴감에 빠진다.
정치는 부패하고, 경제는 불황으로 치닫고, 학교는 붕괴되어 교사들은 떠나고, 가정폭력과 이혼으로 가족이 붕괴되고, 환경은 파괴되어 삶의 질이 떨어지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분위기가 어둡고 불안하다. 서민들은 하루하루 오르는 물가 때문에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이런 것들이 폭풍과 눈보라 그리고 회오리바람으로 느껴지면서 고통과 불안을 확대되어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된다. 꼼짝없이 사면초가에 처했다. 정도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도 다양하겠지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자포자기를 하여 결국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어제 오늘 만의 일이 아니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언제나,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시대를 초월해서 희망의 뉴스와 절망의 뉴스가 공존해 왔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시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인간은 어려움과 위기에 봉착하게 되면 십중팔구가 절망을 한다. 특히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면 상실감은 물론 비감으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절망이 인간들이 삶속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무서운 적(敵)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
철학자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처한 상황에 따라 긍정과 부정을 본인만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다른 말로 환원하면 ‘희망과 절망’으로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한두 번은 절망감을 맛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가족이나 친지 또는 친구의 사망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또는 직장에서의 갈등이나 해고 등으로 슬픔과 고난 속에서 크고 작은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가 하면 인간은 동물과 달리 이성과 감성으로 삶의 질과 가치를 판단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나 기대치에 못 미쳤을 때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크게 낙담하기도 한다.
절망과 희망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한다. 동전의 앞면이냐 뒷면이냐는 순전히 자신이 몫이다. 붉게 물들었던 태양은 저녁이면 지고 말지만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태양은 눈부시게 떠오른다. ‘희망이 곧 태양’이라고 말한 헤밍웨이E.Hemingway는 ‘태양이 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낮과 밤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우리 역시 한 닢의 동전을 엎었다 뒤집었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인간이기에 살면서 절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고 일어서는 것 역시 인간만이 가진 유일한 능력이자 특권이다.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듯이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고 할지라도 절망하기보다는 희망을 열기 위한 지혜를 짜내야 한다. 이 말의 뜻은 희망을 잃어버리면 절망에 빠지고 절망을 이기면 희망을 얻는다는 것이다.
희망을 가지면 웃음이 보이고 절망을 생각하면 울음만 보인다. 차를 기다리는 거리에서 차가 오리라는 믿음은 희망이고 차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포기는 절망이다. 희망 속에는 내일이 있고 절망 속에는 어제만 있을 뿐이다. 희망은 남의 행복한 모습을 축복해 주며 자신의 행복을 염원하는 것이고 절망은 남의 행복을 시기 질투하며 힘들어 하는 것이다. 희망은 넘어졌을 때 일어서려고 발버둥치는 것이고 절망은 넘어졌을 때 아주 눕는 것이다. 염세주의자들은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낙관주의자들은 어디에나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현실주의자들은 희망은 노력여하에 달렸다고 한다.
‘희망은 삶의 기본적인 요소’라고 한다. 의미와 목적이 있는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희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사물이나 사건 등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며, 이런 생각은 심리적 안정과 적극적인 문제 해결 의지로 성공 가능성을 높여준다.
‘절망'은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 없이 모든 길이 막혔을 때다.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슬픔과는 다르다. 슬플 때 눈물을 흘리면 기분이 나아지고 치유되는 느낌이 있지만, 절망할 때는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삶의 의욕은 상실하고 정신이 삭막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희망은 건강한 미래를 위한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절망은 절망을 낳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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