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강주연 극동방송 PD | | ⓒ 익산신문 | | 영유아의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의 삶이 쉽지 않다는 건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상황일 것이다. 바쁜 회사 일정 가운데서도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식사는 잘 하는지, 배변은 잘 가리는지, 어린이 집에서 문제는 없는지.. 여간 신경이 쓰지 않는다. 이때 믿음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만능의 키워드, 친정 어머니이다. 딸이 익산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꺼이 함께 오셔서 주중에는 아이를 봐주시고 주말에 집에 갔다 오는 수고를 감당해주시고 계신다.
어느 날 늦게 퇴근하는 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 때문에 네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아이의 희생, 친정 엄마의 희생, 그리고 홀로 친정에 계신 아버지의 희생, 그리고 주말부부를 감당하는 남편의 희생, 그들의 수고를 쉽게 여기지 말길 바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익산까지 왔지만 난 가족들의 희생을 수반하여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 날이었다.
희생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리는 것이라 말한다. 희생이라는 단어가 숭고하지만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이처럼 누군가의 소중한 것을 제물삼아 이뤄지는 일이라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광복의 기쁨도 수많은 순국선열들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기 때문이고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자유를 노래할 수 있었지 않았던가.
최근 미국에서 온 외국인 손님들을 모시고 서울 지역을 둘러보게 되었다. 극동방송 중앙사가 있는 서울 마포구에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있어 특히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자주 들리게 된다.
그곳은 정말 특별한 감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조선 개화기 당시 활동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을 안장하기 위해 1890년에 조성된 곳인데 그곳엔 그들의 숭고한 삶과 이타적인 희생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열악하고 가난하고 심지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동양의 어떤 나라를 위해 그들은 배를 타고 건너왔지만, 풍토병과 각종 질병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자녀들을 천국에 보냈다. 그들은 구한말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백성들을 가르치고 의료로 섬기며 학교를 세워갔다. 그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바친 그들의 삶을 보며 저절로 숙연해지는 것, 그것이 희생의 힘이 아닐까.
극동방송의 탄생의 배경에도 그런 희생의 땀방울이 스며있다. 1950년대 미국 플로리다에서 방송국을 경영하던 톰 왓슨(Tom Watson)은 러시아, 중국, 몽골 그리고 북한에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또는 정치적인 상황에 의해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잊혀진 자들(Forgotten People)’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다 처분하고 1956년 한국에 한국복음주의방송(극동방송의 전신)을 설립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하나였다.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는 곳, 자유를 억압받은 사람들에게도 민주주의의 정신과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실로 극동방송에서 보내는 전파를 통해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개방 등 민주화 바람에 크게 기여했다 평가되고 있다. 이것이 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인한 놀라운 열매들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희생의 가치를 이 시대에 주는 존재일까 묻고 싶다. 물질만능 주의와 고도의 성장위주의 사회가 정작 중요한 것들을 말 그대로 패싱(Passing)하는 건 아닐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책으로 알려줄 수 없는 것들, 말로 훈계할 수 없는 것들.. 그런 소중한 가치들이야 말로 바로 우리 삶 속에서 나타나는 숭고한 희생의 단계를 내포하며 구현될 때 계승되어 전해질 것이다.
숲에서 길을 내는 자는 힘들다. 하지만 그 길을 따라 후대들이 따라온다면 그것이야 말로 얼마나 가치 있는 발걸음이 될까. 말만 많은 가이드가 되기보단 거친 숲을 헤쳐 가며 바른길로 이끌어줄 수 있는 탐험가가 되고 싶다.
양화진선교사묘원에 묻힌 루비 레이첼 켄드릭(1883∼1908) 선교사의 묘비 문구다. “만일 내게 줄 수 있는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 (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 이런 각오와 이런 마음의 헌신이 있다면 우리 지역, 우리 도시가 조금은 더 아름답게 변해갈 것이다. 진정한 희생의 가치들이 존중받는 시대를 꿈꿔본다.
방금 문자가 왔다. “딸 언제오니. 엄마도 6시에는 퇴근하고 싶다.” 오늘은 엄마가 손주의 육아로부터 빨리 퇴근하실 수 있게 칼퇴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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