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이태호 익산문화재단 사무국장 | | ⓒ 익산신문 | | 지난 2013년 12월 말 국회에서 통과한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의 특수성’을 인정하겠다는 것이 지역문화진흥법과 기본계획의 골자이다. 그리고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실현가능을 높이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지역문화 자치’와 ‘지역문화 분권’이라는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가치와 지향점이다.
‘문화자치’는 문화행정에서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서 주요 권한이 지자체로 완전히 이양된 상태를 의미하며 문화행정에서 지역 자치의 실현은 협의의 개념으로 궁극적으로 ‘문화자치’는 문화도시의 형성 또는 시민 스스로 참여하며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문화의 형성으로 완성된다.
또한 ‘문화분권’이란 문화자치로의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이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 문화정책 권한의 이관, 중앙/지자체 간 수평적 협력체계 구축, 지자체 간의 네트워크 강화방식으로 지역문화정책 구조를 재편하는 것이다. 이처럼 <지역문화진흥법>은 지방자치 시대와 문화의 시대에 지역이 주변이 아니라 또 하나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각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지역학에 대한 연구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미 서울에서는 서울시립대학교와 서울시정연구소를 중심으로 서울학을, 전북대학교와 전남대학 등이 참여한 호남학 연구단에서 호남학을, 안동에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안동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가까운 전주에서는 이미 지난 10여 년 전부터 (재)전주문화재단과 전주역사박물관 등을 중심으로 전주학을 정립시켜나가고 있다. 현재 익산시와 (재)익산문화재단, 그리고 원광대학교 프라임사업단(익산학 연구소)에서 추진하고 있는 익산학(益山學) 역시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태동한 것이라 말할 수 있고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익산은 다양한 문화적 자산과 역사적 자산이 내재되어 있는 고도(古都)이자 역사문화도시이다. 익산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대략 청동기시대부터라고 한다. 영등동, 부송동 등에서 발굴된 청동기 유적이 그것을 말해준다.
익산은 기자의 41대 손인 준왕이 위만의 난리를 피해 마한을 세웠고 마한에 속해 있다가 백제가 마한을 합병한 이후 백제의 30대 무왕 때에는 더욱 강화된 정치적, 경제적 의미를 갖는 지역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백제가 멸망한 이후 20세기에 이를 때까지는 정치, 경제적 의미보다는 종교적이거나 사상적인 의미가 보다 두드러지는 지역이 되었다.
익산학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역사문화도시 익산만의 정체성은 바로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익산의 바른 모습 세우기’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익산학의 기본이 되는 익산만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찾을 때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익산의 역사적인 자원과 가치, 그리고 문화적인 우수성에 초점을 두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익산이 먼저 내세울 수 있는 역사문화적인 가치는 다름 아닌 마한·백제의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이런 가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마한·백제 문화유산의 밑바탕 위에 다양한 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익산만의 근대문화유산역시 발굴하고 개발하여, 문화산업과 문화관광으로 연결함으로써 외부의 관광객들이 익산에 직접 찾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익산만의 정체성을 먼저 회복하고 미흡한 부분은 보완하고 우수한 부분은 적극적으로 알리고 함께 지켜나가야 한다. 잊혀져가고 사라져가는 익산만의 이야기 거리 역시 찾아내어 역사문화도시, 익산의 면모를 갖추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익산시와 원광대학교, 익산 문화원, 익산문화재단 등이 서로 협력하여 사업을 추진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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