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하송 시인 | | ⓒ 익산신문 | | 인도네시아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술라웨시섬에 몰아친 강진과 지진해일(쓰나미)로 사망자가 1200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아직 피해 집계가 되지 않은 지역이 많아서 사망자 숫자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식량 등 생필품 부족으로 치안마저 붕괴돼 군경이 발포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다방면으로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구상 이곳저곳의 천재지변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할 때가 많습니다. 얼마 전 아들이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
오랜 수험생활 끝에 시험에 합격하고 친구와 바람 좀 쐬고 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발령 전에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미국이나 유럽을 권했지만 일본을 선택했습니다. 음식이 맛있고 거리도 가까워서라고 했지만, 부모로부터 여행 경비를 받는 입장에서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일본에 도착한 아들은 SNS를 통하여 구경한 장소와 음식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타국에 있지만 여행 동선이 파악되어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런데 귀국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강한 태풍이 일본을 향하여 북상중이라는 뉴스가 발표됐습니다.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제21호 태풍 ‘제비’가 강도 ‘매우 강함’을 유지한 상태로 일본에 4일 상륙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열도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아들이 머물고 있는 오사카로 ‘제비’가 관통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커져가는 걱정과 함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들한테 태풍 관련 뉴스를 캡처해서 보내자, 그렇잖아도 지금 비가 많이 내린다며 오늘 유니버설 스튜디오 가는 일정인데 운행이 중지돼서 못 가게 됐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그곳은 다음에 가도 되니까 몸조심하라고 이르고, 계속해서 뉴스에 신경을 곤두서며 가슴을 졸이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인터넷에 ‘제비’ 관련해서 피해 속보가 이어졌습니다. 그 아래에, ‘일본을 다 쓸어버리면 좋겠다.’ 로 시작해서 일본을 향한 악담이 수도 없이 댓글로 달렸습니다. 그동안은 그런 글을 보면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일본에 있으니 상황이 달랐습니다. 댓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가슴이 아리고 아픈지, 마치 그 사람들이 아들을 향해서 칼이나 총을 겨누며 달려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들이 친구하고 둘이 다니는 자유여행이라서 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일기예보에 주의를 기울이며 호텔 안에 머물면서 안전수칙을 지켜서 직접적인 피해는 면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끊어지는 한 편 간사이공항까지 침수가 되는 바람에 비행기 운항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공항에만도 5,000명이 고립되고 우리나라 포털 실시간 검색 순위에 ‘간사이공항’이 1위까지 올랐습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가지 못하는 것에 아쉬워했던 아들은 편의점에 물건도 동나고 공항이 폐쇄되어서 일단은 오사카를 탈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재난 영화에서 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신칸센 표 구입하느라 비바람 속에서 몇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신칸센을 타고 후쿠오카로 갔지만 한국행 탑승객이 밀려있어서 며칠 뒤의 비행기 표를 겨우 예매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항공편 부족으로 일본에 발이 묶여 고생한다는 속보가 발표되자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먹고 살만하니까 해외를 갔으니까 그런 고생은 해봐야 한다.’ ‘태풍이 오는데도 기어코 자기 발로 갔으니까 벌을 받아도 싸다.’ ‘그렇게 좋아서 갔으니 한국 오지 말고 거기 살아라.’등
가슴 졸이던 며칠이 지나고 아들은 친구와 함께 무사히 일본에서 돌아왔습니다. 온몸으로 처음 겪은 천재지변 앞에서 적잖이 놀란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소중함과 가족의 소중함도 느낀 듯합니다. 제21호 태풍 ‘제비’로 인하여 일본이 너무 피해가 커서 앞으로 태풍 이름에서 제명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는 항상 가슴속 깊이에 간직하며 되새겨야 할 단어입니다.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관광을 간 사람들이 내 부모, 내 형제, 내 동생이라면 그런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을까? 일본사람이나 일본에 관광을 갔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적대 감정이 담긴 악담을 소나기처럼 맞아야 하는 것인가? 천재지변 앞에서 좀 더 성숙한 마음가짐의 필요성이 크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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