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김성중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 ⓒ 익산신문 | | 가난한 장사꾼이던 전라도 청년이 경상도의 유지 집안의 딸이 절세가인이라는 소문을 듣는다. SNS를 통해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청년은 그녀가 자신의 여자 친구라는 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소문은 걷잡을 수 없게 되고 그녀는 부모님께 큰 꾸지람을 듣게 된다. 미안한 마음에 청년은 그녀에게 찾아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그의 진심을 알게 된 여인은 청년과 정식으로 교제하게 되고 결국에는 부모님의 허락까지 받고 결혼하여 잘살게 된다. 결혼 후 청년은 사업을 확장하여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서동요 이야기를 현대판으로 각색한다면 이정도의 이야기로 나오지 않을까?
건물을 짓고, 사람들을 모으고, 공장을 가동하고, 이러한 모든 것들이 집약되어 산업 발달에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 산업혁명 이후 많은 국가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가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 지역이 개발 호재에 많이 뒤쳐진 탓에 다른 지역에 비해 수혜를 많이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에는 중소도시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자기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창출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는 1년 내내 축제가 열린다고 할 만큼 다양한 축제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우리 익산 역시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서동축제’와 ‘국화축제’가 있다. 준비를 많이 한 듯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지역축제의 한계를 느끼며 늘 아쉬움을 갖게 된다. 천만송이 국화축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된 익산의 축제가 되었다. 매년 가을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주차난을 마다않고 국화축제를 보기 위해 익산으로 모여든다. 화려한 가을 국화의 자태가 축제장 곳곳에서 우아함을 뽐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여운이 없고 축적이 없다.
축제에서 주최 측의 역할은 단순하다. 판을 벌려주는 것이다. 축제 자체에 사람들이 흥이 나서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 전통과 풍습이 되어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가 되어 가는 것이다. 요즘은 반대로 주최 측이 축제를 크게 만들어 억지로 사람들을 끌어 모아 없던 흥을 만들려고 하니 좀처럼 신이 날 수가 없다.
신이 나서 내가 먼저 달려가 어깨춤을 덩실거리는 것이 축제의 진짜 묘미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사람들이 찾는다 해도 축제가 그 시기에 한정된 일회성 행사만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 익산의 경우에도 서동요에 관한 즐길 거리를 체험하고 싶어 찾아오더라도 딱히 갈만한 곳이 없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가 있음에도 그것을 단지 축제 며칠에만 쏟아 붓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오래전에 아름다운 스토리를 우리에게 남겨준 서동왕자와 선화공주를 다시 이곳으로 초대하면 어떨까? 이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천 년 전, 경상도 여자와 전라도 남자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현대까지 고스란히 이어와 우리들의 감성을 두드린다. “그에 응답하는 것 얼마나 익살맞고 재밌는 일일까?”
그들의 이야기 속에 우리가 들어가는 방법은 지금을 살고 있는 현대판 서동왕자와 선화공주들의 이야기를 모집하는 것이다. 요즘 각종 공모전에는 스토리텔링분야가 빠지지 않는다. 다양한 콘텐츠의 공모를 통해 축제를 만들어가는 시민들이 축제의 주인공이 되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시 축제를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게 만들 것이다.
이야기가 갖고 있는 힘은 굴뚝의 연기를 집어 삼킨 지 오래다. 경상도 여자와 전라도 남자의 연애와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집하여 그들을 현대판 선화공주와 서동왕자로 만들어 주는 체험 등을 곁들인다면 평범한 일상이 천 년 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 되는 판타지가 펼쳐 질 테니 축제 속의 재밌는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찾아오는 이들이 즐기기 위해 찾는 축제의 장을 익산은 펼쳐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지역감정 해소’라는 묵직한 시대적 소명과 함께 말이다.
우리가 아무리 내세워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된다. 활기찬 익산, 누구나 한번쯤 찾아오고 싶은 익산을 위해 ‘가장 익산스러운 것이 가장 익살스럽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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