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정성수 시인 | | ⓒ 익산신문 | | 깊은 산속에 숨어 두려운 눈을 뜨고 세상을 내다보는 절은 많다. 그러나 바닷가에 애잔한 눈빛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절은 많지 않다. ‘망해사’라는 절 이름에서 바다 냄새가 났다.
뻘떡게가 안테나를 세우고 어딘가로 바다 소식을 타전하고 갈매기들은 허공에서 제 짝을 찾는다. 파도는 저희들끼리 어깨를 짜고 태평양에 도달하는 야무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망해사는 바다를 꿈꾸는 절이었다. 서해바다를 향해 엎디어 있는 ‘망해사’는 저녁노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품고 있었다. 인접하고 있는 만경평야가 아득하게 펼쳐져 배경이 되어 주고 있었다. 주변에는 귀신사와 금산사, 만경저수지, 백산저수지가 있다. 묘화, 심월 등 고승이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한다. 절은 고즈넉했다. 낙서전 댓돌 위에 정갈하게 놓은 흰 고무신이 더 희게 보였다. 바다를 향해 ㄱ자 형식으로 자리한 요사채와 극락전과 낙서전 건물이 나란하고 한가운데 모셔진 범종각 범종이 금방이라도 종소리를 낼 것 같았다.
만경강 하류 서해에 접하여 자리 잡고 있는 망해사는 오랜 역사에 걸맞지 않게 초라했다. 망해사는 754년(경덕왕13) 통장법사(通藏法師)가 창건한 후 성쇠를 거듭하다가 1609년(광해군1) 선승(禪僧) 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가 중창했다. 1933년부터 다시 본전을 개수했고 1977년에는 보광명전(普光明殿)·칠성각·낙서전(樂西殿)(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8호)을 복원·중수했다. 1984년에는 보광명전과 칠성각을 헐고 그 자리에 대웅전을 새로 지었으며 1989년 종각을 새로 지었다.
망해사에 주석(駐錫)한 진묵대사는 한 채의 전각을 짓고 법당이자 요사채로 사용했다. 소박하면서 서해 낙조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어서 낙서전이라는 당호를 붙였다. 망해사는 앞마당이 없다. 어찌 생각하면 무량(無量)한 갯벌이 모두 앞마당 같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해사 앞에 서면 ‘바다가 절을 부르고 절이 바다를 부른다’고 말하나 보다.
낙서전을 지은 뒤에 진묵은 그리 넓지 않은 앞뜰에 팽나무를 심었다. 바닷바람을 막으려는 뜻도 있었겠지만 작은 마당이 허허로운 탓이기도 했을 것이다. 낙서전에 있는 팽나무 2그루는 망해사에서 1624년부터 400년을 살아온 나무들이다. 봄에 노란색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까만색 열매가 조롱조롱 맺히는 팽나무는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창건한 것과 역사를 같이 한다.
전면 10m 거리에 있는 팽나무는 높이가 21m, 가지 길이는 동서로 24.8m, 남북으로 22m로서 안정된 수형을 형성하고 낙서전 좌측 15m 거리에 있는 팽나무는 높이가 17m, 가지 길이는 동서로 16.7m, 남북으로 17m다.
입간판에 ‘망해사 팽나무’라고 씌어 있지만 사람들은 두 나무 가운데 우뚝 선 큰 나무를 ‘할배나무’라고 부르고 그 옆 작은 나무를 ‘할매나무’라고 부른다. 노인의 호칭인 ‘할배’나 ‘할매’를 나무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다. 이유는 팽나무는 비자나무나 은행나무처럼 암·수 딴 그루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이 같은 지식은 소용이 없다. 다만 요사채 앞마당에 풍성하고 너그러운 품으로 서 있는 팽나무를 보고 자신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400년을 살아 온 팽나무의 나이를 생각하더라도 영원한 할배와 할매가 아닐 수 없다. 한 쌍의 팽나무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윽한 눈길을 나누며 긴 세월을 살아왔다. 겉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평생 드러내지 않으면서 속으로 서로를 보듬어 안고 살아가는 우리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성정과 분위기를 영락없이 닮았다.
극락전 앞뜰에 소박한 돌확 속에 부레옥잠의 통통한 줄기가 옛날 순이를 생각하게 했다. 잠시 추억에 잠겼다가 현실로 돌아와 부레옥잠에 눈길을 주다가 뒤뜰로 향했다. 낙서전의 뒤뜰에 순간 바람이 불어와 댓잎을 흔드는 것이었다. 댓바람소리는 청량하다 못해 가슴 한 쪽을 긋고 지나갔다.
낙서전을 마주한 곳에 놓인 돌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멀리 고군산 열도가 보였다. 주먹만 한 그것들이 사람 사는 섬이라고 생각하니 바다에 비하면 장남감에 불과하였다. 파도들은 물이랑을 만들면서 망해사를 향해 찰랑거리며 다가왔다. 범종각이 자리 잡은 아래 개펄을 머금은 서해바다가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고 파도가 되지 못한 것들은 바다 속에 잠겼다.
진묵스님의 바다를 향한 기도가 물에 잠긴 망해사를 다시 세운 사연을 짐작해기에는 바다는 깊었다. 저녁이 깊어 갔지만 바다 끝에 걸친 해는 제 모습을 감추기 싫었는지 새털구름 한 조각을 깔고 편한 제세로 누워 있다. 햇살이 부채꼴로 망해사 앞바다를 부추고 있다. 장엄한 망해사의 일몰 앞에서는 모두가 한낱 점에 불과하였다. 서해바다를 짙게 물들이는 저녁노을과 서른 세 번 울리는 범종 종소리를 뒤로하고 망해사는 멀어져 갔다. 하늘에 뜬 들이 하나둘 바다에 얼굴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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