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전북대학교 특성화캠퍼스 내에 있는 화랑회 이상운 의사 추모탑. | | ⓒ 익산신문 | | 이상운 의사는 현재의 전북대학교 특성화캠퍼스 터에 있던 이리농림학교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평소 조국애와 의기심으로 정의롭게 살고 싶어 일제 강정기 시절 이리농림학교 2학년이던 1943년, 16세의 나이로 동기생 장지환, 김구 등과 항일결사인 화랑회를 조직하고 선배 장이규, 김직수, 김용환 등이 조직한 독립단과 제휴하여 김제경찰서를 습격하고 목천포 철교를 폭파하는 무장투쟁을 전개하여 애국동포들을 봉기케 함으로써 조국을 찾기로 맹약하였습니다.
같은 해 5월 17일 밤 동지들과 거사에 착수하여 고깔봉광산에 집결하였으나 일본경찰에 전원 체포된 후 이상운의사는 일본경찰의 혹독한 고문으로 애석하게도 1945년 7월12일 광복직전에 옥중에서 순국하였습니다.(1991.8.15. 건국훈장애국장 추서)
“제 몸을 썩혀 조국을 소생 시키는 씨감자가 되자”던 의사의 뜻을 기리어 이 탑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 위치 : 전북 익산시 고봉로 79(전북대학교 특성화캠퍼스 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