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소현숙 세림약국 약사 | | ⓒ 익산신문 | | 지난 봄 부터 여름까지 주말마다 근교에 있는 텃밭에 매달려 살았다. 한 주간을 일터인 약국의 닫힌 공간에서 보내다가 텃밭을 찾아가는 길은 각종 향기로운 방향(芳香)으로 넘쳐흘렀다.
도심을 벗어나서 전원 길로 접어들면 아름드리 오동나무가 몇 그루 서있는데 엄마의 분 냄새처럼 향기로운 오동꽃향기가 일에 시달렸던 복잡한 머리를 상쾌하게 치유해주었다. 오동나무 아래 연보랏빛 작은 종모양의 오동 꽃이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면 갓길에 차를 세우고 오동 꽃을 주워 꽃 탑 쌓기 놀이를 해본다.
꽃 탑이 첩첩이 쌓이면 가슴속에도 꽃향기가 쌓이고 머리를 복잡하게 했던 상념들은 밖으로 밀려나 사라진다. 이윽고 텃밭에 도착하면 밭 한쪽에 심어놓은 폐튜니아꽃 향기도 달콤한 분 냄새로 다가와 가슴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나는 폐튜니아 꽃밭에 엎드려 잡초를 뽑으며 심호흡으로 아로마 테라피를 한다. 그리운 어머니의 향기를 들이마신다.
초등학교 때였던가? 어느 추운 겨울 감기에 걸려 학교를 조퇴하고 집에 돌아와 방에 누워있었다. 엄마는 빨래를 하다말고 방에 들어와서 열에 들뜬 이마를 만져주신다. 찬물에 빨래를 하던 엄마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세탁비누냄새가 배어있었다. 엄마는 비누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손으로 이마를 짚어주고 감귤 하나를 까서 고열로 신음하는 딸아이의 입에 넣어주신다. 이마와 볼에 끓고 있었던 뜨거운 열은 엄마의 차가운 손에 시원하게 식어갔고 나는 기운을 차렸다. 세탁비누냄새와 감귤의 향이 뒤섞인 엄마 손의 냄새는 해열제를 능가하는 아로마테라피(향기요법)였다. 어느 날은 생선을 손질하다가 비린내가 배여 있는 손으로 이마를 만져주시기도 했다. 지금도 엄마를 생각하면 엄마의 손에 배인 생선비린내도 문득 문득 그리워진다.
대학시절, 약제학 담당 교수님 말씀이 떠오른다. 화장품제조에 관한 향장학 개론을 강의하시며 향수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재스민과 장미와 바이올렛, 수선화의 향을 추출하여 만드는 사넬 향수 제조법을 설명하면서 “여러분들은 향수 중 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샤넬넘버 5와 같은 방향을 지닌 사람들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사람의 후각은 쉽게 마비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향기도 후각이 마비되면 느낄 수 없는데 이 후각을 깨우는 방법이 있다. 그 것은 바로 암모니아 향을 맡는 방법이다.
향수를 제조하는 사람들도 향기를 감별하기 위해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향으로 후각을 깨운 후 방향을 감별한다”고 하셨다. 그 옛날 재래식 화장실에 들어서면 대소변이 발효되어 암모니아냄새가 코를 찌르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화장실에 한참동안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머리가 맑아졌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 연유이었을 까? 어느 날은 동화책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기도 했고, 시험 보는 날 아침이면 문제집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기도 했다. 암모니아의 강렬한 향이 머리를 맑게 해 주었는지 기분 좋은 시험점수를 얻기도 했다.
꽃밭에서는 백합이 개화를 해서 짙은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지난 가을에 심어둔 백합의 구근이 자라서 꽃봉오리를 활짝 열고 감미로운 향기로 후각을 유혹한다. 그런데 백합의 향을 맡으면서 불현듯 돌아가신 시모님이 생각났다. 당뇨병과 요실금 증상이 있는 시모는 아침이면 욕실 앞에서 기저귀를 교환하시는데 톡 쏘는 특이취가 배어있는 기저귀의 지린내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주방까지 날아오곤 했었다. 음식을 만들다가 그 특이취에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니 기저귀의 그 특이취와 백합의 향기가 비슷하다고 느껴지면서 노 시모가 한 송이 백합화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백합은 보통 하얀 나리꽃을 연상하기에 흰 백자(白)를 쓰는 백합(白合)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백합 구근 하나는 얇은 비늘 같은 인편(鱗片)이 백 개 이상 모여서 이뤄지기에 일 백 백자(百) 백합(百合)이라고 표기한다. 시모의 안면에 생긴 쪼글쪼글한 주름을 보면서 백합(百合)구근의 인편 한 조각, 한 조각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모는 지난한 삶의 여정에서 한 조각 한 조각 백합 구근의 인편을 만들고, 꽃을 피워 몸에서 꽃향기를 흘린다. 당뇨가 있는 소변은 체내에서 포도당을 이용하지 못하고 소변으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달콤한 꽃향기가 섞여 있는 듯도 했다.
이렇듯 달콤한 방향(芳香)만이 나의 아로마 테라피의 소재가 아니었다. 몸과 마음을 환기시켜 주고 일깨워 주는 맵고, 짜고, 달고, 시고, 쓴 모든 맛이 삶의 여정에서 생긴 아픔을 치유해 주는 아로마 향이었다. 매운 맛의 숨 가쁨, 짠 맛의 움츠림, 신맛의 오싹함, 쓴맛의 놀라움 등이 삶의 여정에 복병처럼 따라다니지만 그 오묘한 맛의 치유력은 놀랍게도 감미로움으로 남아 다음 삶의 여정을 향해 나아갈 무한한 힘을 선물해준다고 믿는다.
고열을 식혀주고 아픔을 치유해주는 백약(百藥)의 향기가 배인 아로마향에 아울러 마음의 고통까지 치유해주는 아로마향을 찾아서 오늘도 약국의 조제실을 분주하게 서성거린다. 또한 마음의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며 기쁨과 위안을 선물해 줄 마음의 표정을 짓는 연습을 해본다. 그리고 텃밭과 꽃밭을 찾아가서 잡초를 뽑아내며 향기로운 꽃을 피울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 호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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