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김복현 익산 역사문화 회장 | | ⓒ 익산신문 | | 3・1절을 맞이하여 지난날의 서러움에 대하여 울분을 삼키면서 나라를 지켜낸 선열들의 거룩한 희생정신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고마운 생각을 하면서 공감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공감이라는 말은 오늘날 자주 듣고 곧잘 사용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공감이 가득한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공감이 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모두가 원하고 있다.
특히 경쟁이 극심한 오늘의 사회생활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정이 메말라 가다보니 잘못된 것만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모두가 상호간에 공감을 나누지 못하고 갈등만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공감이 넘치는 사회는 온갖 갈등이 최소화된 사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공감은 상대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기에 힘들고 어려울 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보는 사람 듣는 사람이 함께 위로 받고 위로하는 그런 상태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감이 가는 말 한마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항상 공감이 넘치는 사회는 훈훈한 사회이며 미래지향적인 세상을 만들어가는 효소가 되고 잇다. 그런데 이 공감이라는 표현이 남발되다보니 상대의 마음에 공감한다고 스스로 생각될지 몰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은 어긋난 공감으로 표현되고 있는 경우가 우리주변에 종종 발생되어지고 있다. 이때 어긋난 공감은 공감이 아닌 동정이라고 말해야 한다. 공감과 동정은 유사하게 사용될지 몰라도 차이가 있다.
그래서 공감과 동정에 대한 차이점을 찾아보면 공감 (empathy)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함께 나누는 것임에 비해 동정(sympathy)은 유사한듯하지만 다르다. 동정은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불행을 보며 가엾게 여기는 일방향의 마음이다. 따라서 동정은 경쟁이 치열한 사회 환경으로 인하여 상호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동정은 약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으로 하나의 공동체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점점 공감과 측은지심의 사회보다는 혐오와 상호 비방의 사회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와는 다르게 너는 불쌍한 존재라는 태도로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마음과도 혼돈될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함께 어려움을 나누기보다는 한수 아래로 대하는 듯 섣부른 충고와 비판을 하기도 한다. 동정은 타인의 불운과 고통에 대해 작동하기에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하기보다는 감정의 도를 넘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지나친 감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슬퍼하는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도하게 오열하고 분노한다면 정작 당사자는 감정을 표현할 기회조차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무서운 생각이 상상되어 말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 해결방법은 먼저 가정에서 공감 교육이 되어야 하나 이 또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이다. 타인을 도와줌으로서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공감이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그리고 원초적인 감각 중의 하나라는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태아와 어머니 사이의 공감, 갓난아이들 사이에서의 울음소리에 의한 공감, 공감은 인간이라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가장 먼저 발달한 그런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감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공감 교육이 필요하다. 공감교육을 통하여 타인을 배려할 수 있고 타인에게 양보를 할 수도 있고 타인을 이해하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감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흔히 공감을 핑계로 실제로는 자기의 느낌을 타인에게 돌리는 자기중심적인 방어자세가 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실제 감정에 대한 배려 없이 일방적으로 이러이러한 느낌일 것이라 속단하고 확정할 수도 있다. 어느 때는 제멋대로 해석하고 낙인을 찍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동정이 만들어내는 일들은 진정한 마음과 거리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공감은 타인의 느낌뿐만 아니라 생각과 관점까지도 함께 이해해야 하기에 세상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이며 보편적인 상식위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느낌, 생각과 입장을 나누는 속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필요한 기본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이 필수적인 공감능력을 우리사회에 높일 방법은 무엇일까? 국가지도자는 물론 온 국민이 공감능력을 키워나가는 일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는 세상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특정 계층이나 극히 일부가 향유하는 공감이 아니기에 모두를 위한 공감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 앞에 전개되는 선거의 계절에 절실하게 필요한 민주시민 정신이기도 하다. 공감정치야말로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지금 당장 우리 모두에게 공감은 필요한 것이다. 평창올림픽에서 공감을 찾아 즐거웠던 것처럼 우리의 삶이 마냥 공감이 넘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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