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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窓】겨울이 가기 전에 눈꽃이 지기 전에 - 정성수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18년 01월 22일(월)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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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수 시인
ⓒ 익산신문 
오가는 사람들을 웅숭그리게 만들고 골목 전봇대 아래 자리 잡은 포장마차에 사람을 불러들이는 것이 겨울이다.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집들은 집대로 안정되게 보이고 편안하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은 사색을 하고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한 계절이다. 모든 걸 떨어버리고 가장 정직한 계절이 겨울이다. 황량한 겨울이라고 불평하지 마라. 황량한 것은 겨울이 아니라 불평을 일삼는 사람의 마음이다.

겨울은 묵언정진(默言精進)이다. 천만년을 침묵한다. 겨울은 손에 쥔 것은 물론 오장육부까지 비워내고 자신의 존재도 버린다.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는다. 과학이나 지식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허공이 되고자 하는 것이 겨울이다. 폭설이 쌓이고 또 눈보라가 쳐도 꼼짝달싹 하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기까지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영원을 추구한다. 한 계절 동안만 유효하다는 것을 아는 겨울은 침묵의 정수리가 보이지 않는다. 정신의 뼈가 드러나지 않는다. 눈보라 속에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리고 명상에 몸을 맡긴다.

겨울은 맑다. 맑음에서 또 새로운 생명의 움이 틀 준비를 하고 있다. 새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봄을 위해서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청량한 사색은 겨울만의 자랑이다. 겨울은 바람의 집이다. 천지를 떠돌던 바람이 겨울로 다 모여든다. 바람은 산에 안기고 나무의 허파 깊숙이 파고든다. 바다의 귀싸대기를 때리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는 울면서 바람에게 한 자락을 내어 준다.

겨울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눈이다. 나뭇가지마다 피어난 눈꽃은 아름답다. 순백을 바라보면 눈이 시리고 가슴은 따뜻해진다. 눈이 좋다. 싸락싸락 내리는 눈도, 함박함박 내리는 함박눈도 눈은 다 좋다. 눈이 내리면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 가보면 사람 구경은 언제 해도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늘을 보며 내리는 눈에 감탄을 하는 사람, 눈을 털어내기에 손놀림이 바쁜 사람, 각양각색이다.

늘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포근함을 주고 여유를 잃지 말라고 어깨를 감싸주는 눈을 바라보는 동안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삶은 얼마나 치열해야 하는지 자각한다. 눈은 누구에게나 행복과 추억. 사색과 낭만을 주는데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때는 가까운 커피숍에라도 들어가 아메리카노 커피 향을 음미하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것도 낭만적이다. 둘이서 라면 더 좋다. '로스 차코스 Los Chacos'의 ‘환상의 플로네이즈’를 틀어놓고 귀를 맡기면 겨울이 추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당 건너 외양간에는 어미 소가 젖배 곯아 칭얼대는 송아지를 끌어안고 잠이 들고, 뒤꼍 대나무 밭에는 비둘기 부부가 폭설에 저녁을 굶었다고 불만스럽게 구구대고 있다. 마루 밑에는 누렁이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 밤하늘별을 세고 있어도 겨울은 밤이 있어 좋다. 그리움의 물레를 저을 때 생각의 실타래는 구만리 창천을 돌아와 머리맡에 쌓인다. 겨울밤에 꾸는 꿈은 야무지고 길다. 그게 겨울밤이다.

밤새 울어대던 부엉이 울음소리도 멈춘 지 오래다. 메밀묵 장수는 어디로 갔는지 골목에 그림자마저 사라졌다. 가로등 아래서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들은 등을 보이고 돌아섰는지 보이지 않는다. 화롯불에 굽던 알밤이 새까맣게 타도 누구 한사람 뒤집어 주지 않는다. 창호지문에 비치던 실루엣 같은 할머니와 손자는 잠이 들었는지 소식 한자 없다. 

살다가 보면 겨울도 얼 때가 있다. 겨울이 활화산 같은 정념을 불태우더니 마지막 남은 물기마저 배출한다. 세월도 해가 지나면서 점점 굳어진다. 수피(樹皮)가 딱딱해지는 것은 세월의 흔적이다. 피가 돌지 않는다. 굳어지는 것은 모두 죽음이다. 영화도, 탐욕도, 애증도, 희비도 다 내려놓고 겨울은 빈손으로 서 있다. 맨몸에 맨살뿐이다. 그것은 마냥 맨 것이 아니다. 겨울은 알고 있다. 비워야 채워질 게 있다는 것을, 줘야 받을 것이 있다는 것을, 보내야 돌아올 게 있다는 것을, 그것이 자연의 이치임을 인간들만 모르고 있다. 유有가 곧 무(無)요, 무가 곧 유임을 알고 있는 것은 겨울 뿐이다. 이제 겨울은 새로운 순간들을 조용히 끌어안고 있다.

겨울이 가기 전에 한번 쯤 눈다운 눈이 내리면 좋겠다. 첫 발자국을 남기며 온 사람, 돌아가지 못하게 폭설이면 더욱 좋겠다. 겨울이 깊어져 가는 동안 사랑을 해야 한다. 이 겨울이 가고나면 사랑 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겨울은 때가 되면 떠나가고 사랑할 수 있는 시간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눈꽃이 지기 전에 사랑하지 않으면 가슴에 구멍 하나 날 것이다. 찬바람 숭숭 들어오면 사랑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시끄러워도 눈은 내리고 내리고, 밤을 새워 내린다.

마스터 기자  i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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