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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주어(主語)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병인(病因)이 역사든 세월이든 사랑이든 우리는 병을 앓는다. 늙은 것이다. 자신의 얼굴이 낯선 풍경화처럼 보일 때 우리는 아프다. 삶이라는 문장에서 주어가 빠지고 스스로 가지 잘린 늙은 나무라고 생각될 때, 어둠에 자꾸 체하고 영혼이 반 토막 났을 때 우리는 단풍든다. 김수영식으로 말하자면 단지 우리는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갈' 뿐이다. 그것이 살아 있는 자의 의지이자 시인의 의지이다. 가을 단풍이 든다. 지금 병을 노래하는 자, 아직 젊다는 증거다. 시인들이 병을 사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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