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성중 익산성장더포럼 대표 | | ⓒ 익산신문 | 지미카터 미국대통령이 4∼5년 내에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해서 어수선했던 1977년도 여름, 7월 13일 저녁 9시 30분경, 미국 뉴욕시에 전기를 공급하는 콘 에디슨 원자력 발전소에 벼락이 떨어지면서 온 뉴욕 도시의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다. 저녁시간이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던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에 갇혔고, 엘리베이터, 공항, 병원 응급실 등 모든 건물에 전력 공급이 모두 멈추었다. 이날 밤은 뉴요커들에게 가장 어두웠던 밤으로 기억된다. 도시가 빛을 잃은 사이, 거리의 많은 상점들이 습격을 당하고 물건들을 약탈당했다. 또한 곳곳에서 방화가 일어나 수많은 건물들이 불길에 휩싸이게 되어서 도시가 혼란에 휩싸였다.
당시 소방관들은 1500통의 화재 신고를 받았고, 그중 400통만이 진짜 신고전화였다고 한다. 25시간 후 다시 전기가 원래대로 공급되기 전까지, 뉴욕은 말 그대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결과적으로 하룻밤 사이 1000건이 넘는 화재와 1600여 개의 상점들이 습격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사태를 두고 로스엔젤레스 타임즈는 “눈부신 자부심을 가진 도시, 정전과 함께 빛을 잃다”라는 제하의 보도를 했다. 평범했던 시민들마저 범죄의 충동에 휘말렸던 뉴욕의 대정전 사태, 그 당시 3,776명이 체포되면서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사람들이 체포된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같은 해 가을, 11월 11일 저녁 9시15분경 익산역(당시 이리역)에서도 대규모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폭발한 열차에는 한국화약에서 생산한 화약 30톤(다이너마이트 914개 포함)이 실려 있었다. 다이너마이트가 터진 이리역 구내에는 깊이 15m, 직경 30m의 큰 웅덩이가 패였다. 역 구내에 있던 객차·화물열차·기관차 등 30여 량 남짓이 파손되었고 철로가 엿가락처럼 휘어져버렸다. 당시 전라북도가 집계한 열차 폭발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자 59명, 중상자 185명, 경상자 1,158명 등으로 총 1,402명에 달한다. 피해 가옥 동수는 전파가 811동, 반파가 780동, 소파가 6,042동, 공공시설물을 포함한 재산피해 총액이 61억원에 달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이재민 수만도 1,674세대 7,873명이나 되었다.
당시 익산역 주변에는 다수의 금은방이 있었고 폭발로 인해 금은방과 각종 상점의 유리가 모두 깨지고 암흑천지가 되었지만 약탈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역 주변에 위치한 신탁은행 금고의 문이 충격으로 열렸는데도 금고 안에 들어있던 현금을 가지고 간 사람도 없었다. (그날 경찰서 유치장에는 20여명이 있었는데 폭발 후에도 절도범이나 약탈 등으로 인한 범죄자가 증가하지 않았다고 당시 근무자의 증언도 있다). 오히려 많은 시민들이 손전등과 촛불을 들고 나와 부상자를 구호하는데 앞장서는 등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중앙동 삼남극장에서는 공연시작 15분 만에 폭발사고가 일어나 극장지붕이 무너져 5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상황에서 작고한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가수 하춘하씨를 업고 뛰어 대피시킨 일화까지 등장할 정도로 많은 분이 구호활동에 앞장섰다.
40년 전 발생한 역사적 두 사건을 마주하면서 익산시민으로서 자랑스럽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문화적 향취와 영성도시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 또한, 2017년 현재를 살고 있는 익산시민으로서 이러한 자랑스러움과 자부심을 기억하며 ‘익산성공시대’를 이끌 원동력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을 실감한다. 비록 지금은 조금 어렵더라도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우리고향 익산을 꿈꾸며 가슴 벅차 오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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