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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아름다운 청년 시인, 윤동주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17년 09월 28일(목)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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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진 황등중 교사
ⓒ 익산신문
2017년은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올해 우리 익산시도 시립도서관 주최로 펼치는 한 도시 한 책 읽기 선정도서가 안소영,'시인 동주'(창비, 2015)이다.

암흑기를 견디게 해준 이 시인이 있어 우리 문학사는 암흑의 시대에 한 줄기 빛이 있었다. 역사는 집단의 기억, 문학은 개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역사보다는 문학이 더 깊게 시대를 드러내기도 한다. 윤동주의 문학이 그렇다.

1948년 1월에 나온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문에서 당대 최고의 시인 정지용이 “일제 강점기에 날뛰던 부일(附日) 문사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뱉을 것뿐이나,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고 한 소리로 꾸짖은 것(一喝)도 이런 문학사적 의미에 대한 지적일 것이다.

윤동주의 시가 시인의 자격으로 인쇄매체에 실린 것은 그가 사망한 이후인 1947년 2월 13일 경향신문에 실린 ‘쉽게 쓰여진 시’라 할 수 있다.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에서 드러나는 내면지향적인 특성,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에서 보이는 부끄러움의 감정,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에서 보이는 또 다른 자아의 등장 등이 그것이다. 이런 특질 중에 가장 근원적인 것은 또 다른 자아의 문제이다. 윤동주의 시에는 또 다른 ‘나’가 자주 등장한다.


윤동주에게는 이처럼 지상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자아 이외에 또 다른 자아가 있었다. 이 자아는 현실적 자아인 시인에게 개인적 주관으로부터 벗어나서 객관적으로 자신을 개관(槪觀)하게 한다. 시인이 맞닥뜨린 삶을 거리를 두고 시대와 역사라는 커다란 차원에서 자신을 성찰하게 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 윤동주의 시가 의미가 있다면 바로 이런 아름다운 자아를 생각하게 함에 있다.

우리에게도 또 다른 자아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것은 세속적 가치에 물든 자아이다. 현실적 자아에게 바람직한 지향을 제시해줄 수 없거나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조장하기까지 하는 부정적 자아, 타락한 자아가 대부분이다. 아름다운 자아와 사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 자신의 삶을 비춰보면 안다. 아름다운 자아와 함께 살아간 사람만이 그의 삶과 그 결과물을 순수하고 정갈하게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역사 앞에 자신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으며, 그래서 가장 어두운 시대의 초라함을 면하게 할 수 있다. 윤동주 시를 읽으며 그의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은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예의일 것이다.


오늘 우리사회에서 이른바 사회지도층들은 권력과 명예와 부를 누리려고만 하지, 책임지려 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들의 배움이, 나이가 지위에 비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을 보면 윤동주는 무엇이 그리도 부러웠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윤동주는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을 시대의 탓으로 그럴 수도 있음으로 돌리지 않았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 그것을 인정하는 것 더 나아가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큰 용기이고 신념이고 인격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윤동주의 시를 읽고 또 읽었으면 좋겠다.


문득 필자도 일제강점기에 아파하던 식민지 청년 윤동주였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에 윤동주의 시가 새롭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명색이 선생으로, 목사로, 가장으로 살아가면서 부끄러움이 참으로 많다. 그런데 그것을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오늘은 삶의 부끄러움으로 집 아이들에게 학교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면서 필자에게 주어진 삶을 다짐해본다.

마스터 기자  i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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