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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덕 시인 여행답사-베트남 현지기행
다낭(Danang)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17년 06월 26일(월)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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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낭은 베트남 최대 상업도시이자 세번째로 큰도시로 베트남 전쟁때 미군의 최대 기지로 사용됐던 곳이다.
ⓒ 익산신문


다낭(Danang)

역사
다낭의 이름은 참어의 Da Nak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큰 강의 입구'라는 뜻이다. 이 곳의 기원은 192년 말레이계인 참족 거주자가 세운 참파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다낭은 참 족의 중요 거점으로 번영을 누렸다.

1847년, 2명의 프랑스선교사들이 수감되자 이들을 구출하고, 베트남에서의 카톨릭교 의식의 자유를 얻어내기 위해 프랑스 해군의 장바티스트 세실은 2대의 전함과 라피에르 대령을 다낭에 보냈다. 만약 라피에르 대령이, 레페브르 주교가 이미 자유의 몸이 되어 싱가포르로 가는 길이었다는 점을 미리 알았더라면, 라피에르는 베트남의 배들의 마스트를 해체함으로써 공격을 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협상이 아무 성과없이 결렬되자 결과적으로 1847년 4월 14일, 프랑스는 다낭 항에 정박중이던 나머지 다섯척의 황동 갑판으로 되어 있는 배들을 침몰시키는 공격을 이어갔다. 1847년 4월 15일, 프랑스 함대와 베트남 배들간의 전투(다낭 폭격)가 벌어져, 베트남 배들중 세 척이 침몰하고 프랑스 함대는 도망쳐 나왔다.

나폴레옹 3세는 프랑스의 로마카톨릭 선교사들에 대한 베트남의 박해에 응징하고 베트남 조정에 프랑스군의 베트남 주둔을 강요하고자 전쟁의 개시를 승인(1858년)했다. 이로써 1858년부터 베트남과 프랑스는 전쟁에 돌입했다. 프랑스 해군은 리고 드주누이제독 지휘하에 다낭을 점령(1858년 9월 1일)했다. 이 때부터 다낭은 투란이라고 불렸다. 다낭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5대도시의 하나가 되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다낭은 남베트남군과 미군의 주요한 공군기지로 활용됐다. 그때부터 다낭의 인구는 1백만명이 넘게 증가했다. 1968년 후에 전투의 여파로 후에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낭으로 피신했다.

자연
다낭은 남중국해와 맞닿아 있다. 미케해변은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 중의 하나이다. 20킬로미터에 이르는 백사장이 197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휴양소로 사용됐다. 다낭 시내에서 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해변의 길이에 비해 개발이 덜된 편이라 조용하고 한적하다. 차이나 비치라고도 하는데, 이는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제목에서 유래한다.

박미안해변은 응우한선 박미안 구에 위치한다. 시내 중심부에서 남동쪽으로 7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박미안 해변은 4킬로미터에 이르는 해안과 백사장 그리고 5성급 푸라마 리조트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몇개의 리조트가 더 있다. 1975년 이전에는 자연 해변이었는데, 그 이후 휴양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산은 응우한썬이 유명하다. 다낭시내와 호이안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5개의 높지 않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목썬, 호아썬, 터썬, 낌썬, 투어썬이고 이들이 목・화・토・금・수 오행을 관장하는 산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 영어로는 마블 마운틴이라고도 한다. 응우한선 중에는 물을 관장한다는 투이썬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투이썬에는 많은 동굴이 있는데 동굴마다 불상이 모셔져 있다. 156개의 계단 위에 있는 정상 전망대에서의 조망이 일품이다. 이웃한 4개의 봉우리와 기슭에 자리한 마을 풍경이 그림 같다. 산기슭 마을의 대리석 공방에서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구경할 수 있다.

문화
다낭의 역사는 약30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의 문화가 존재한 4천년에 비하면 비교적 신생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다낭에는 참 박물관과 옛 사원들이 있다. 다낭 시내에서 유일한 볼거리로 꼽을 만한 참 박물관은 지난날의 화려함을 대변하는 곳이다.

1915년 프랑스 동아시아 학회에서 설립한 참 박물관은 참족과 관련된 박물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박물관을 지은 이래 소소한 수리만 해온 탓에 전시의 짜임새는 떨어지지만, 참족이 남긴 정교하고 아름다운 300여 점의 조각품을 볼 수 있다. 다낭성당은 1923년 프랑스인이 세운 천주교 성당으로서, 다낭 건축물의 상징격이다.
특히 중세 유럽풍의 외부장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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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기자  i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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