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익산신문 | | 꼰대는 나이 값을 못하고 자신의 경험을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독불장군이나 외골수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말만 앞세우는 옹고집 지식인들이 꼰대 부류에 속한다. 그런가하면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先生)’ ‘아버지’ ‘늙은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젊은 사람이라도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꼰대라고 부른다. 절망스럽게도 나이든 스승을 꼰대라고 부르는 제자가 있는가 하면 자기 아버지에게 꼰대라는 호칭을 쓰는 자식이 있는 한심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어원은 번데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번데기 같은 늙은이라는 뜻으로 ‘꼰데기’로 부르다가 은어가 되어 ‘꼰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친일파 대신들에게 사탕발림으로 '백작(Comte)' 직위를 부여하면서 생겼다는 설도 있다. 영어 표현인 ‘Comte’를 일본식으로 '콘데'로 읽던 것이 꼰대가 되었다고도 한다. 꼰대는 지난 날 고생한 얘기를 자랑스럽게 하면서 자기의 틀에 젊은이를 끌어들이려고 잔소리와 간섭이 많다. 젊은이들은 나이 많은 사람의 외모보다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꼰대스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원래 꼰대는 나쁜 뜻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이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이었으나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자신의 직위를 믿고 허세를 부리는 늙은이를 가리키면서 부정적인 말이 되었다. 예전에는 ‘꼰데’라는 말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꼰대’라는 언어가 기성세대를 깎아내리는 말로 변질되었다. 뿐만 아니라 명사인 꼰대에 접사인 질을 붙여 속되게 ‘꼰대질’이라고 폄훼하기도 한다. 꼰대 짓을 하는 사람의 행동과 사고를 ’꼰대리즘’이라고도 한다.
조지 오웰은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알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고 했다. 꼰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사회가 변하지 않는 이상 꼰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누구나 바쁘다. 죽도록 일하지 않으면 목구멍에 거미줄 치기 십상이다. 이런 와중에 꼰대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의 소통은 물론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함에도 여건은 나쁘다. 일자리는 고사하고 희망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나는 이랬다’ 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말해봤자 통할 리가 없다.
요즘 꼰대 문화가 팽배하다 보니 나이 든 어른들이 말을 했다하면 저것은 꼰대질이라고 비아냥대는 경우가 많다. 이는 꼰대질에 지친 사람이 많아 충고라도 하면 반감부터 사기 때문이다. 충고를 충고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무조건 꼰대질로 희화하거나 난도질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휴대전화기에 아버지를 ‘수꼰대’ 어머니를 ‘암꼰대’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그랜드꼰대’로 설정한 자식이 있다고 한다. 이런 행위야말로 젊은 ‘꼰대질’이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꼰대들은 진화했다. 소통과 공감을 적절하게 구사함으로서 마치 멘토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내가 너희만 할 때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 ‘어린 것들은 하는 짓이란…’ 흔히 꼰대의 전형적인 3대 어법을 사용했다. 반면에 요즘 진화한 꼰대들의 어법은 의외로 공감의 표피를 쓴 ‘민주적’ 어투를 쓴다. 예를 들면 ‘미안한데…’ 또는 ‘하지만…’과 같이 ‘조건형 사과’로 시작한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상황은 그러지만…’ 이라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는 게 요즘 신 꼰대들이다. 그러다가 의견이 관철되지 않으면 우격다짐도 불사한다. 알고 보면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의견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적인 의사 결정 따위를 염두에 두지 않았는다는 것이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육하원칙이 있다 그것은 “첫째 내가 누군지 알아? (Who) 둘째 니가 뭘 안다고? (What) 셋째 어딜 감히 (Where) 넷째 이래봬도 왕년에 (When) 다섯째 어떻게 나한테 (How) 여섯째 내가 그걸 왜 (Why)”다.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실생활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누구에게나 나이를 묻지 않는 것이 좋다. 나이를 묻는다는 것은 상대방과 위아래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은근히 자신이 나이가 더 많다는 것을 상대에게 주지시키려는 처사다.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음을 드러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자랑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자랑은 내게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특히 재산 자랑이나 인맥 자랑은 잘 보이게 하려는 알량한 호소임을 상대방은 알고 있다. 조언을 한답시고 꼬치꼬치 캐지 묻지 않아야 한다. 인생 선배로서 조언한다거나 자식 같아서 조언한다는 말은 안하는 것이 좋다. 상대방에게는 잔소리일 뿐이다. 잘되라고 하는 이야기라는 말 역시 한심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가 호의로 받아들일 준비가 없는데도 일방적 호의는 강압이자 폭력일 뿐이다. 상대가 궁금해 하면서 물어오는 것만 대답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이나 지위로 대우받으려 하는 것도 금물이다. 장유유서는 창고에 들어간 지 오래다. 이 지위를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데 이제 대우받기를 포기하란 말이냐며 억울해 하는 것도 꼴몰견이다. 젊은이들에게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 받는 대우야 말로 대우 중의 대우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언제든지 꼰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로 서열을 매기기를 당연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꼰대란 젊은이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꺼내드는 칼과 같다. 섬뜩하다는 생각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꼰대로부터 탈출 가능하다. 상대와 내가 살아온 날들과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꼰대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몸가짐과 마음 씀씀이를 바르게 해야 한다. 그때 꼰대가 아닌 진정한 어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