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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익산시선거관리위원회 오재만 지도담당관 | | ⓒ 익산신문 |
‘통합과 화합’이라는 큰 유훈을 남기고 떠난 '문민 대통령' 고(故)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던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발언이 말해주듯 그의 반세기 정치역정은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의 나날이었다.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홍수같이 넘쳐나는 현시대에 있어서 오히려 국민들은 그 말의 의미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을 말한다. 즉,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이 곧 왕인 셈이다. 다만 물리적, 방법적 한계 때문에 개개인인 국민이 직접 통치하는 방식이 아닌 대의민주제, 즉 대표자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일정한 연령에 이른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투표권이 주어지는 보통선거권의 역사는 서양의 경우 수 백년 간의 투쟁과 그에 따른 희생의 산물이었다. 성별·인종·경제적 지위·지역·종교 등에 따라 차등이 있던 참정권이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주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우리나라는 1948년 헌법을 제정할 때 보통선거와 평등선거원칙이 명시되어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선거권 행사의 험난한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선거에 대한 아픈 역사가 있다. 1974년 유신 헌법으로 출범한 제4공화국부터 제5공화국 시기인 1987년까지 13년간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 하고 간접선거로 국가의 대통령을 뽑아야 했던 암울한 역사가 있다. 또한 헌법에 규정된 지방자치도 오랫동안 시행되지 못하다 1995년에서야 지방선거가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70~80년대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군부독재의 탄압 속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투쟁하고 희생되었다.
그러나 최근 실시된 선거에서 갈수록 낮아지는 투표율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거에 대한 무관심과 저조한 참여에는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무관심이 지속될 경우 어렵게 이룩한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무관심이나 투표를 하지 않는 등의 잘못된 관행은 과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많은 희생을 했던 시대로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벌은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 당하는 것이다.’라고 했으며, 프랑스의 정치철학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고 했다.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은 무책임한 정치로 다시 국민에게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대의제 정치에서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신성하고도 강력한 수단은 투표이다.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정치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혹은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있어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최선의 권리행사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내년 4월 우리 지역에서는 제20대 국회의원선거와 익산시장재선거가 동시에 실시된다. 우리 지역의 대표를 뽑는 선거인만큼 주인의식을 가지고 어떤 후보자가 실현 가능한 정책과 공약을 제시했는지를 꼼꼼히 따져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함으로써 우리지역에 만연한 갈등과 불신을 치유하고 민주주의의 새로운 초석을 쌓아올리는 선거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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