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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정기정 국창 정정렬 추모 제15회 익산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 대회장 | | ⓒ 익산신문 | | 우리 고장 익산의 자랑이자 국악인의 스승인 국창 정정렬 선생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한 익산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 올해로 15회째를 맞아 최근 대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익산에서 매년 열리는 전국 규모의 판소리 대회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까지는 숨은 공로자가 있어 가능했다는 평이다.
그 주인공은 정기정 ‘국창 정정렬 추모 제15회 익산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 대회장이다.
정기정 대회장은 “해가 거듭될 수록 그 위상이 높아가고 있다. 본 경연 대회가 명실상부한 대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정 대회장은 “익산은 백제의 찬란한 문화가 꽃 피워진 수도로서의 역할과 지리적 요충지이며 농경사회의 중심이기도 했다는 것을 판소리와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 농악 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쾌거로 잘 알려지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문화와 풍부한 농업의 바탕이 만들어 낸 이들 유산을 발전시키고 계승함에 본 대회를 통해 보여줘야 한다고 정 대회장은 강조했다.
그래서 정 대회장이 앞으로 바라는 작으마한 소망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정정렬 추모 익산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에 전국에서 참여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고 익산 시민들도 더 많이 참석해 판소리의 고장이라는 확고한 명성을 얻길 바라는 것이다.
익산에서 중견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정기정 대회장은 이외에도 모교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으며 지역 아동복지시설과 어려운 청소년들을 후원하고 있다.
한편 정정렬(1876∼1938) 명창은 19세기 말 ‘조선적’인 판소리 시대가 끝나갈 무렵 태어나 오랜 수련을 통해 ‘일류 명창’, ‘국창’(國唱)으로 이름을 올린 국악인이다.
특히 ‘근세오명창’(五名唱)의 하나로 꼽히는 등 최고의 명창이자 소리꾼이다.
서편제 명창으로 7세 때에 명창 정창업의 문하에 들어가서 판소리를 공부했고, 14세 때에 명창 이날치에게 2년간 배웠다.
훗날 미륵산의 심곡사(深谷寺), 부여 무량사, 공주 갑사 등지에서 40세 무렵까지 혼자 연마했다. 목성이 탁하고 음량이 부족하며 상성(上聲)이 막혀 ‘떡목’이라 희망이 없었지만 생명을 걸고 수련해 명창으로 성공했다니 참으로 놀랍다는 평이다.
그는 50세 전후해 송만갑 등과 조선성악회에서 공연과 후진양성에 애썼는데, 송만갑이 세상을 뜬 뒤 제자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서편제의 맛깔 나는 성음과 능한 부침새로 ‘춘향가’를 많이 개작했다.
그의 제자인 동초 김연수 선생이 "정정렬 낳고 춘향가 났다"고 말할 정도로 인기였으며, 동생인 정원섭은 당대의 명고(名鼓: 유명한 고수)로 유명했다. /채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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