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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발굴된 부엌터와 철제 솥 | | ⓒ 익산신문 | |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조선시대 왕궁 수라간에 비유되는 백제 사비기 왕궁의 부엌터가 확인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배병선)는 26년에 걸쳐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유적의 서남편 일대(8300㎡)에 대한 백제 사비기 왕궁의 부엌(廚)터로 추정되는 동서 6.8m, 남북 11.3m 규모의 건물터를 발견 했다고 20일 밝혔다.
삼국시대는 물론 통일신라시대를 통틀어 왕궁터에서 부엌으로 보이는 건물지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건물지 내 타원형 구덩이에서는 철제솥 2점과 함께 어깨가 넓은 항아리 2점, 목이 짧고 아가리가 곧은 항아리1점, 목이 짧은 병 2점 등 토기 5점과 숫돌 3점을 발견했다. 바로 옆 바깥에서는 철제솥 1점이 별도로 놓여 있었다. 아울러 구덩이 옆에는 불탄 흙과 검붉게 변한 벽체, 다량의 숯이 바닥면에 깔려 있는 지점 두 곳도 확인됐다. 토기 중 일부에서는 안에 액체가 담겨 있었던 흔적이 확인됐고, 다양한 크기의 숫돌은 여러 면이 깎여 있어 도구에 따라 숫돌의 다른 면을 돌려가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철제솥은 원형 돌기가 달린 바닥에 어깨에는 넓은 턱이 있고 아가리는 안쪽으로 살짝 휘어져 있다. 이는 익산 미륵사지, 부여 부소산성, 광양 마로산성 등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이후의 철제솥과 유사해 고대 백제계 철제솥의 변화양상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 | | ↑↑ 배병선 소장이 발굴된 부엌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 | ⓒ 익산신문 | | 배병선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이번 발굴로 왕궁이라는 확실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물들을 통해서 당시 백제왕궁의 생활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발굴 작업이다.”라고 말했다.
익산 왕궁성에서 가장 중요한 곳에 위치한 대형 전각 건물의 서쪽 담장을 따라 길이 29.6m, 너비 4.5m 규모로 남북으로 긴 형태를 이룬 건물터 등 다양한 건물터들이 확인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향후 발굴조사에서 정전 동쪽에서도 이런 형식의 건물터가 발견된다면 이 같은 건물배치는 왕궁리 유적보다 시기가 늦은 일본 오사카 나니와궁, 나라 아스카궁 등의 궁성 축조형식과 닮아 백제 궁성 축조형식이 일본에 전파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남북쪽만 돌로 쌓고 동서쪽은 돌로 쌓지 않은 길이 8m, 너비와 높이 84~90cm의 석축시설이 확인됐다. 바닥에 나무기둥 시설도 남아 있어 화장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그동안의 발굴조사 성과를 토대로 유적의 체계적인 보존정비·활용을 통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익산 왕궁리 유적의 가치를 더욱 널리 알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왕궁리 유적에서는 그동안 궁장, 대형 전각을 비롯한 각종 전각 터, 금·유리 도가니가 발견된 공방터 등이 확인됐다. 또 인장 기와, 연화문 수막새 등 중요 유물 1만여 점이 출토돼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에 박경철 시장은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유물발굴로 인해 익산이 1500년전의 신비한 고대 국가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역사적인 날이다. 세계 전문가들이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이 백제의 옛 모습에 그대로 변함이 없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전 국민과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익산시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그간의 발굴조사 성과를 토대로 앞으로 유적의 체계적인 보존정비·활용을 통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익산 왕궁리 유적의 가치를 더욱 널리 알릴 수 있도록 힘써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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