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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강익현 한의사 | | ⓒ 익산신문 | 요즈음 씨름이 인기 있는 스포츠다. 숨을 헐떡이며 환호하는 모습들이 부럽게도 힘차 보인다. 이 씨름이 원래는 ‘씨놀음’ 이었다고 한다.
모계사회에서 여자가 배우자를 고를 때 힘센 남자를 고르기 위해 ‘씨놀음’을 시킨 것이 씨름의 원형이라 한다.
거기서 승리한 자가 장가를 들어 씨를 남기는 것이었다. 힘이 필요한 시기에는 부족의 장도 이렇게 선출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지략이 필요한 시대가 되어서는 누가 ‘지혜’를 가지고 있느냐를 선택해야했을 것이다.
어떤 안이 또는 누가 더 지혜로울까? 그래서 의사를 결정하는데 투표가 채택됐다. 그래서 선거의 역사는 문명사와 함께했을 것이고 기록으로 보면 이미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에도 투표의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도 백제의 정사암 회의, 신라의 화백 회의, 고구려의 제가 회의 등이 있어 투표로 의사를 결정했다.
그러나 인간의 권력욕과 이기심으로 선거는 종종 굴절되기도 했다.
그 유명한 도편 추방 투표로 페리클레스 같은 훌륭한 지도자도 나라 밖을 해맬 수밖에 없었고 오늘날도 민주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모순에 시민들은 머리를 흔든다.
이러한 일들이 당선자만의 잘못인가? 그렇지 않다.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 선거운동과정부터 이기적인 사고를 가지고 모인다.
선거 운동원들의 말을 되 새겨보자. ‘내가 돕는 후보는 정말 훌륭하여 이 직책에 매우 적합하다’고 하는가? ‘이 사람이 되어야 너와 내가 덕을 본다’라고 하는가?
투표자는 본인을 위하여 이기적 투표하고 당선자는 공익을 위하여 일하라는 것이다.
이 과정을 겪으며 당선된 자는 과연 그렇게 할까? 또 자기를 도와 당선에 도움을 준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면 ‘의리’가 되고 그것이 탄로가 나면 ‘비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선자는 항상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이다. 자칫하면 수감생활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 이렇게 당선된 사람은 이기적 존재가 아닌가? 그렇다고 유권자나 당선자가 자기반성을 얼마나 할까?
선거관련 위법사항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억울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나만 잘 못했나 하는 생각이 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을 2천5백 년 전에 공자는 미리 알고나 있었던 처럼 승이무치(勝而無恥: 증거를 조작하고, 괴변으로 이기고자 할 뿐 부끄러움을 모른다. -예기. 표기편-)라 기술하고 있다.
들키지만 않으면 무엇이든하고 들키면 법정에서 버티고 어떻게든 이기면 된다.
이를 보는 투표자들은 고개를 돌린다. 다시는 투표를 안 할 것처럼. 그러나 다음 선거에서 또 투표를 한다.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개개인이 투표를 하든 안하든 당선자는 생긴다는 것, 다른 부류는 이번에는 나도 이익권 내에 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다. 이 심리를 소위 선거 브록커들이 이용하여 건강한 사회를 헤친다.
이런 선거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투표용지에 ‘지지후보가 없다’는 란을 신설해 유효 투표 중 이 란에 기표한 유권자가 50%를 넘으면 당선자가 없는 것으로 하자.
자기의 권리를 위임할 후보가 없다는 것을 표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제도가 시행 되면 ‘내 권한을 위임할 사람이 없을 때’ 유용한 의사표시가 되어 진정한 후보만 등록되고 당선될 수 있게 된다.
물론 당선자가 없는 선거에는 정부의 보전금도 없어야한다. 그리고 이런 후보를 공천한 당은 재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게 하고 그 선거에 출마한 자는 후보 자격이 없어야한다.
왜? 이미 유권자들이 권리를 위임할 수 없는 당이나 사람이라고 심판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진정으로 보장하는 게 아닐까?
이 투표방법은 기권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이 제도가 시행이 되면 공당의 후보 공천이나 개인의 입후보에 훨씬 신중을 기할 것이고 국민은 자기의 권리를 위임하고 싶지 않은 후보를 억지로 선택해야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둘째, 진정한 정책선거를 해보자.
말은 정책 선거라 하고 실제는 후보의 철학이나 능력보다 ‘어디에 땅을 구입했다’ ‘누구와 ⅹⅹ관계이다’ 등등 입 소문 선거에 주력하고 실제 공약사항은 다른 사람이 대신 써 준 것을 외워서 하는 선거를 어찌 정책선거라 하겠는가?
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자기의 정책을 알리고 평가 받고 수정하여 정말 대안을 마련할 기회를 많이 갖자.
그렇게 되면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선거가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요즈음은 자기의 생각이나 정책을 발표할 곳이 많다.
익산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매체만 해도 인터넷을 비롯하여 종이 신문까지 10 여 곳이 있고 개인 SNS를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민들께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후보를 가리는 기준이 선거 운동 기간에 뒷소문의 영향으로 흔들려 후보자를 선정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 그의 정책에 대해 묻고 토론하고 수정하여 인물도 사회도 건강하게 세워보자.
그래서 선거 운동 기간에 운동원이 ‘나는 이래서 이 후보를 지지 한다’고 선거운동을 해보자.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는 이런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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