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서동왕자가 어릴 적 놀던 마룡지는 성인 키만큼이나 뻗은 잡초더미에 덮여 지고 있다. | | ⓒ 익산신문 | | 익산 지역에는 유난히 백제시대의 유물이 많이 나온다. 그 이유는 5세기 중엽부터 백제의 지방 중심세력이었고 7세기를 전후하여 금강변의 웅포 지역보다 내륙에 위치한 금마 지역을 중심으로 백제문화의 꽃을 피웠다. 즉, 7세기를 전후한 백제문화의 전성기 때 백제의 중심지가 바로 익산이었기 때문에 유난히 백제유물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을 포함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됨에 따라 국내는 물론 해외 관광객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익산시가 특색 있는 관광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할 것으로 지적된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왕비의 발원으로 지어진 사찰이다. 현제 절터만 남아 있으며, 사적 제150호 익산미륵사지로 지정되어 있지만, 백제 무왕의 발자취가 절터만 있는게 아니라 주위 곳곳에 남아 있다.
|  | | | ↑↑ 미흡한 안내 표지판 인근 주민도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 | ⓒ 익산신문 | | 서동 생가터 부터 익산토성까지 백제의 숨겨진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세계유산 등재의 걸맞지 않게 관리 체계는 너무나 허술하다는 쓴소리가 난무하고 있다.
금마 초입에 보면 ‘연방죽’이라는 넓은 연못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마룡지’라는 어린 무왕이 유년 시절을 보낸곳으로 동쪽 편에는 서동생가터가 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반해 안내판은 물론 성인 키만큼이나 뻗은 잡초더미에 감히 발조차 내미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흉물처럼 방치돼 있다. ‘서동생가터’란 안내 표지판은 스쳐지나가기 일쑤이고 막상 찾았다해도 어딘지 알 수 없어 인근 주민들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한다.
이런 사정 속에서도 지난 2월부터 오는 11월까지 미륵사지, 익산토성과 익산쌍릉, 서동생가터 용샘 등 무왕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 코스로 선정된바 있다.
|  | | | ↑↑ 도로 포장 이라고 자갈만 깔아 놓아 내리는 장맛비에 휩쓸려 나갈 것으로 우려된다. | | ⓒ 익산신문 | | 더불어, 익산토성과 익산쌍릉을 가려면 험난한 길을 가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산토성’은 사적 제92호로 백제 무왕 시절 처음으로 쌓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청동제 유물들이 출토돼 이곳의 중요성과 ‘익산쌍릉’의 주인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능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곳을 방문하려면 금마면 서고도리 쌍릉길 초입 연화가든에서 출발하자면 자갈밭을 올라가야한다. 이곳 또한 조그만 안내 표지판 하나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 지고 있다.
토성 진입로서 만나 주민 이모씨(56)씨는 “차라리 개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개발 한다고 대형 덤프 트럭이 왔다갔다 하면서 내는 먼지 때문에 빨래를 널 수 없다. 도로 포장 말한지가 몇 년째인데 자갈 좀 깔아놓고 다했다는데 이건 아니다”며, “이대로 놨다가 비라도 오면 침수피해를 입을텐데 크나큰 타격을 주민들이 감수해야 하는거 아니냐”며 역설했다.
익산시 역사문화재과 관계자는 “서동생가터를 어떻게든 발굴하여 보존하고 싶지만 사유지이기 때문에 토지주와 대립 상태이다”며, “제방쪽은 풀이 자람과 동시에 관리를 하고 있으나 인원과 예산 문제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  | | | ↑↑ 나무에 가려, 있으나마나 한 안내표지판 | | ⓒ 익산신문 | | 또한, 익산토성과 쌍릉 진입로는 매립된 문화재 보존과 주위 환경 훼손을 문제로 문화재위원회에서 부결돼 도로 포장은 할 수 없다고 전하며, 친환경적으로 도로 계획이 세워지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예산 문제가 걸림돌이 되는 요소이다.
이렇다보니,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때부터 5년동안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허투루 현지 실사만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김연식 시의원은 “세계에서 인정받은 문화재인 만큼 보호할건 보호하고 발굴.개발해 오물만 수거할게 아니라 경제와 연관시켜 단체장들이 자리에만 연연할게 아니라 지역 간 활성화 시켜 우리 익산을 다녀갈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을 해야 한다”며, “준비 안 된 유네스코 등재는 부끄러운 일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재정비 해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문명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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