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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익산신문 | |
“국가를 위해 싸워 몸도 병들고 마음도 병들었지만 국가는 참전유공자들을 너무 등한시 해.
참 가슴이 미어지고 참전유공자들이 불쌍해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
|  | | | ↑↑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박윤구 익산지회장 | | ⓒ 익산신문 | |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박윤구(83) 익산지회장은 서부지선부터 동부지선까지 포병직으로 수송하는 임무를 맡아 6.25에 참전했다.
박 회장은 “난 참전 한 것도 아니지. 포병이 무슨 전쟁에 참전했다고나 할 수 있나.”
라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 포병직이라도 전쟁에 참전 한 것은 후회를 한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정말 먹고 살기 힘든 시절, 밥이라도 제때 먹어보자며 전쟁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생계를 위해 소년병, 학도병으로 징집당한 어린 학생들은 대부분이였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은 65년이 흐른 지금 83세~91세가 되었다.
배우지 못한 이들은 현재에도 그 어려움과 궁핍함은 여전하다고 한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몸과 마음도 지친 이들은 다친 상의 유공자만 보상금이 더 나올 뿐 맹목적으로 전쟁에 참전한 이들은 몸이 멀쩡하다는 이유로 18만원의 국가 지원금만 받을 뿐이다.
박 지회장은 “경찰, 소방관 유공자들도 물론 훌륭하지만 그들은 월급 받고 일했기에 그나마 형편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아무 대가 없이 참전한 유공자들은 국가를 위해 싸운 공로를 기여해 조금 더 배려를 해줘야 하지 않나 싶어 많은 시도를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묵묵부답이였다. 지금은 80%로 환자가 된 이들은 이제는 힘이 없어 정부에 대응조차 할 수 도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또한 7년 전 익산 국가 유공자가 1200명 이였지만 해마다 세상을 등지는 유공자들이 많아져 지금은 500명 남짓으로 몇 년 후 에는 6.25참전유공자회마저 유지가 될지 모르겠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1953년 7월27일 휴전이 선포되자 박 지회장은 제대를 희망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수당만 지급하며 보수, 연금도 없는 그런 군 생활이 싫어 제대 신청을 하고 5년이 지난 1958년 군을 정영화 시키며 장교로 제대한 박 지회장은 참전유공자 회장직을 역임한지 올해로 7년째이다.
처음 회장직을 맡았을 때 는 참전유공자들이 참담하게 살고 있는 현실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한다.
하물며 어려운 형편에 천원 한 장도 아까워 벌벌 떨며 쓰지 못하는 모습에 시 보조금을 받아 사무실과 식당을 재정비하고 20~25인분을 준비해 참전용사들에게 점심대접을 하기 시작했다.
박 지회장은 유공자들이 점심이라도 따뜻하게 배부르게 먹는 것을 보면 전쟁에 참전한 것보다 더 뿌듯하고 행복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그런 시설과 식사 대접하는 곳은 전국에서 익산이 유일한 곳이라며 송하진 도시자를 비롯해 지역인사들도 방문하여 점심도 함께 먹으며 참전용사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아울러 박 지회장은 “배도 고프고 힘들었던 시절 그래도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하나로 버텨냈지만 전쟁은 꿈에도 생각하기 싫다. 6.25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젊은 세대에 바라는 것은 우리의 희생을 헛되게 여기지 말고 전쟁에 참전한 유공자들과 희생자들의 뜻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당부했다.
또한 7년 전 참전유공자들에게 지원되는 1만원이였던 보조금이 박 지회장의 부단한 노력 끝에 6만원을 받고 있다. 이어 지자체 예산이 적은 충청도도 참전 유공자들에게 10만원을 지원해주고 있다며 익산 참전 유공자들도 그가 지회장직을 맡고 있는 동안 10만원까지 올리고 싶다고 당찬 계획을 밝히며 어렵게 사는 참전유공자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6월 16일부터~18일까지 익산시 내 초 중 고 4개 학교를 대상으로 ‘6·25 바로알기 교육’을 실시하였다. 급변하는 남북관계와 국제 정세에 따른 나라사랑 교육의 중요성이 한층 더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6·25 바로알기 교육’은 학생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채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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