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익산신문 | | “6·25 때 황해도 연백에서 피란 왔다가 학교 종을 치고 교무실 청소와 심부름을 하면서 야간으로 남성중학교를 졸업했다. 남성고를 졸업할 때까지 죽으로 끼니를 때우고 급우들이 한 숟가락씩 덜어주는 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적도 많았다.”
11일 전북애향대상을 수상한 손태희(79) 남성학원 이사장이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손태희 이사장은 일성안티몬,IS테크,IS오토를 비롯해 5개 기업을 거느린 입지전적 실향민 사업가다. 1959년 남성고 9회 졸업생인 손 이사장은 1989년부터 학교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 울타리 안에 남성고·남성여고·남성중·남성여중 등 4개 학교가 있는 학교는 전국에 남성학원밖에 없다. “국내에서 1972년 이후 중·고교 사학이 한개도 설립된 적이 왜 없느냐”며 손 이사장은 사학경영의 어려움을 표시했다.
북한이 고향인 그가 익산과 인연을 갖게 된 것은 열네 살 때 6·25전쟁이 터지면서다.
1950년 혈혈단신 피란을 감행해 강화도에 머물다 1952년 고향 사람 200여명을 따라 이리수용소로 왔다. 농협창고를 빌려 쓴 이리수용소는 마침 남성고 앞에 있었다. 반년 이상을 수용소에서 보내던 어느 날 새벽 남성고 윤제술 교장이 우연히 배설물을 치우는 모습을 보고 집으로 데려와 학교에 사환으로 취직시켰다.
얼마 후 윤제술 교장이 국회에 진출하면서 백남규 교장이 취임했다. 백 교장의 도움으로 그는 남성중 야간에 등록했다. 손태희는 숙직실에서 기거하며 낮에는 사환으로, 밤에는 공부를 했다. 남성고(9회)에 진학해서는 비교적 상황이 좋아졌다. 남성고를 졸업한 그는 한양대 토목과를 들어갔다가 전과해 상과를 마친다.
첫 직장 신필름영화사를 거쳐 서비스업을 하다 합성수지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이 때 안티몬을 처음 접한 그는 1978년에 희토류인 안티몬 개발에 뛰어들었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3년 만에 자체적으로 안티몬 개발에 성공했다.
일성 안티몬은 현재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고 일본,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일성안티몬을 모기업으로 해서 그는 자동차부품회사 IS오토, IS테크와 액정화면 제조사인 유레이를 설립했다. 1989년 동문들의 권유로 남성학원 이사장을 맡았다.
이사장 취임 후 학교에 500억 원이 넘는 많은 기금을 넣었다. 수익용 기본재산 72억원, IS테크 주식 68억5천만원, 보당장학재단 기금 105억원,일성당 생활관에 17억원 등이다. 또한 자율형사립고 전환 후 법인 지원금은 장학금 9억5천만원, 법인전입금 18억원, IS테크 주식 배당금 17억9천여만원 등이다. 기부액중에 현재 법인에 남아있는 금액은 262억원이다.
부인 김순옥 씨는 한국여성경영자총협회장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사절단 일행으로 한중경제통상협력포럼에 참석했다.
-운동은 자주 하나. 일과를 삼등분으로 쓰고 있다. 1/3은 학원에서,1/3은 공장에서,1/3은 운동하고 있다. 가급적 학교에 머물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정에 있는 나무 한그루, 한그루 모두 내 손으로 심었다. 조경석도 멋진 것만 골라 옮겨왔다. 학교에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장학금을 많이 준다는데. 25년간 남성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도와줘야 한다. 장학금을 50%이상 주려고 한다. 농촌 아이들은 공부하는데 다소 어려운데, 이들이 맘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줘야 한다. 아무쪼록 학생들이 큰 꿈을 실현하는 힘이 됐으면 한다. 내가 열심히 돈 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성고가 자율형 사립고 전환후 어떻게 변했나. 남성고는 명문고임을 자부한다. 자율형사립고는 남성고가 인재를 붙들기 위해서 추진한 것이다. 익산을 떠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교육 때문이다. 우수한 우리 고장 인재들이 인근 전주나 대전 등지로 떠난다. 고교 비평준화 때 익산의 인구가 늘었다. 이걸 보면 남성고가 붙들어줘야 한다. 학생들은 자율형사립고에 대한 긍지가 대단하다. 교사들도 용기를 내 열심히 해준다. 눈으로 보인다. 사명감과 용기로 가득하다. 현실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 보기 좋다. 올해 육·해·공군사관학교에 36명, 경찰대 5명, 11명 서울대 지원자중 수시만 5명이 합격했다. 뿌듯하다. 신입생으로 군산,전주에서 150여명이 왔다.
-교육철학은. 용기와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하면 알찬 결실을 맺는다. 점수 덜 맞고, 더 맞고는 인생에 있어 결코 중요한 게 아니다. 조금 뒤 떨어지더라도 용기와 희망 갖고 목표달성을 향해 가다보면 반드시 값진 열매를 만날 것이다. 21세기 리더십은 성실과 신의가 바탕이다. 좌절과 유혹,불의와 타협해선 안된다.
-애향대상 수상 소감은. 수출상,산업포장 등 많은 상을 받았지만 지역에서 주는 이 상이 가장 의미가 크다. 감회가 새롭다. 6.25 피난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익산에 정착하고 도민의 사랑을 받아 지역인재 육성에 힘을 쏟을 수 있었다. 이제는 전북을 위해 여생을 보내겠다.
-앞으로 계획은. 북에서 온 16살 소년을 익산이 보듬어주고 키워줬다. 은혜를 입었으니 이제는 그 빚을 갚겠다. 어린 나이에 친구도 없고 희망도 없을 때 ‘남성’이 어머니 품처럼 따뜻하게 안아줬다. 적당한 시기에 우리 부부 재산 일체를 학원에 맡길 생각이다.
/하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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