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정훈 원광대 가정아동복지학과 교수 | | ⓒ 익산신문 | 우울한 날이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 ‘학생, 가족 스트레스 심한 한국 교육제도 바꿔야’, 그리고 ‘살기 좋은 나라, 한국 25위’라는 쓸쓸한 3개의 기사가 하루 신문에 났다. 얼마 전에는 한국의 행복지수가 거의 세계 최하위에 이른다는 기사도 있었다. 몇 년 전 ‘중소도시 아이들의 행복도가 가장 높다’는 기사를 보면서 내심 ‘엄마가 익산 살아서 네가 행복한거야.’라고 큰 소리 쳤는데 그럼 아직도 여긴 안전한 걸까?
누구는 ‘우리 아이들은 역사 상 부모보다 덜 오래 살고, 경제적으로도 덜 풍요로운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부모는 그저 아이가 행복하게 나보다 더 잘 살기를 바라고 모든 노력을 하는데 왜 정작 우리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하고, 아이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그럼 우리가 제대로 노력하고 있는지 우리의 헛 노력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어떻게 살면 우리아이는 가장 행복할까?
우리가 행복하려면 ‘나’로 살 수 있을 때이다. 내가 나로서 살 수 있다면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울 것이고, 그렇다면 스트레스도 적을 것이고, 열정을 갖고 원하는 것을 향해 즐겁게 나아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의 본질을 내보이고, 그 본질로서 힘을 쓰는 것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아이를 파악하기 위해 다른 아이, 다른 사람의 아이라는 줄자를 쓴다.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 키가 큰지, 수학을 잘하는지, 친구의 아이와 비교해서 영어를 잘하는지, 엄마에게 잘하는지... 아이에게 다른 사람으로 살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우리가 행복할 때는 사랑받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지지해주는 것을 알고, 또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지지해줄 수 있을 때다. 이것은 ‘다른 사람보다’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라는 상황에서 우리는 행복하다는 것을 말한다. 경쟁만을 해서는 우리는 언제나 적들에게 둘러쌓여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불안하고, 힘겨울 수 밖에 없다. 한 사람을 이기면 또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온 세상 사람을 모두 이길 수 있으며, 모두를 이긴 후 정상에 혼자 서서 누구와 내가 이룬 것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주위의 친구들과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사랑하고, 배려하며 함께 협력할 수 있다면 우리는 내가 가진 힘의 몇 배를 힘을 갖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부모가 형제가, 친구들이 옆에서 나를 지지해 주고, 도와줄텐데 난 무엇이 두려울까? 모두가 내편인데...
우리가 행복할 또 하나의 상황은 내가 나 자신을 믿고 자신이 있을 때이다. 자존감이 높을 때 우리는 나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다. 내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고, 그 성취가 다른 사람과 비교되지 않고 자신의 성취에 만족할 수 있고, 스스로 자랑스럽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아이들이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게 하지 않는다. 당당하게 나아가지 못하고, 언제 앞에서 나올 경쟁자를 두려워하며, 주위만 두리번거리는 쫌스러운 인간으로 키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관용이라는 가치에 중요성을 두는 관용지수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한다. 부모들도 아이에게 관용의 가치를 가르치겠다는 비율이 다른 나라 부모들보다 낮다고 한다. 이것은 허허벌판에 다른 나라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나오는데 우리 아이는 혼자 장난감 칼하나 차고 내보내는 것과 같다. 얼마나 힘들고 두렵겠는가? 그렇게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면서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터에 내보내는 우리는 정말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맞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