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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전대영 대한노인회 익산시지회장 | | ⓒ 익산신문 | 예전에는 환갑을 맞으면 장수했다 하여 잔치를 벌였으나, 요즘에는 노인 축에도 들지 못 한다. 의학과 경제, 제반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그만큼 고된 노동이 줄고,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맞아 우리가 살아야 할 날들은 더욱 많아졌다. 55~60세에 은퇴한다고 보면, 살아온 날만큼 더 살아야 한다.
오늘의 60대 이상 노년 세대는 3중으로 불행한 세대다. 어려서는 없어서 못 먹었고, 지금은 건강 해칠까 못 먹고, 미래는 준비가 안 되어 불안하기 때문이다. 6?25 전쟁 이후 극심한 가난과 싸우며 자식들 양육하느라 노후를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예전에는 2대, 3대, 심지어 4대까지 함께 사는 대가족 사회였기에 노인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핵가족화 경향으로 생활 노력이 없는 노인 부부, 혹은 독거노인들이 날로 늘고 있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노인이 몇 달 만에 애견(愛犬)과 함께 백골로 발견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듣는 일은 이제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평생을 사회발전과 자식들을 위해 바친 어르신들이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자식들조차 모른 체 한다면 그보다 더 비참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효는 동방예의지국인 한반도에서 반드시 필요한 문학적 가치임에 틀림 없다 정치인들을 포함해서 앞선 엘리트 지도층들을 인터뷰해봐도 ‘효 의 필요성’을 결코 부인 하지 않는다. ‘불효(不孝)’의 꼬리표를 그 누가 달고 싶을까?
욕(辱)중에 가장 더러운 욕이 ‘불효자식’ 이 아니던가?
이처럼 문화적 가치로서, 사회소통의 언어로서 ‘효(孝)’ 는 부모님처럼 존중 받아야 할 소중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교(敎)는 효(孝)를 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무지게 색체처럼 다양한 효의 색깔들을 인터뷰하면서, 효(孝)에 대한 그 근본의 뿌리는 동일하고 단지 색깔이 무지개처럼 다양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가족공동체를 제대로 유지하게 할 수 있을까? 효치 행정의 근본 방향은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할 것 같다.
효(孝)는 노인과 자식의 결합이다.
자식이 노인을 업고 있는 모습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소통하는 그런 관계를 의미한다. 인류의 구성 요소인 인간은 가족을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는 지혜를 터득한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사랑으로 돌보면서 인류는 멸망하지 않고 시간 속에서 존재를 거듭하며 ‘역사’를 창조했다 효(孝)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 이다. 뿌리없는 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듯이 옛날과 전통의 역사적 뿌리를 통해서 현실의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최우선으로 수행 과제로 내 세웠다. 창조경제는 바로 정보형명의 핵심이다. 정보형명은 곧 ‘무형의 소통’ 곧 ‘스마트’ 혁명과 관련 있다. 전화가 만들어진 것이 과연 무엇인가? 컴퓨터가 발달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핸드폰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네트워크가, SNS가, 네이버, 인터냇이 폭증하는 이유가 무엇인? 모두 소통(疏通)이 목적이다.
소통은 곧 효(孝)이다. 나와 나를 있게 한 어머니와 만남, 나와 나의 가족과 만남. 나와 나의 국가와 만남. 나와 너의 만남, 나와 내 안의 만남, 나의 현실과 나의 과거의 만남, 현대와 과거의 만남, 한국과 세계의 만남, 제자와 선생의 만남, 등 모든 소통의 근본 뿌리는 곧 효(孝)로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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