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국악예술원 소리뫼 대표 | | ⓒ 익산신문 |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가 요만 허면 만족하리 일촌간장 맺힌 설움 부모님 생각이 절로 난다.” 창부타령에 나오는 가사이다. 내 처지를 말하는 것 같다. 지난 토요일에는 “서울 KBS 국악한마당”이라는 프로그램 녹화차 서울에 다녀왔다.
지역방송은 수차례 출연했고 중앙방송도 촬영은 했지만 스튜디오 녹화는 처음이다.
가족들 덕분에 뜻하지 않게 호사를 누리고 있다
내 인생에 언론에다 방송에다 판을 치니 살림은 쪼그라질망정 사는 맛은 솔솔하다.
우리 식구들이 이름하여 국악가족이라는 타이틀로 세상밖으로 다니는 것은 생각지도 않은 일이지만 곰곰 생각하니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첫째 부모덕이다. 술이 밥이요 삶이었을 만큼 주당이셨던 아버지는 소 몰고 논밭 갈아 자식들을 먹여 살렸지만 나는 땅 한뙤기 돈 한푼 물려받지 못했다. 취중 푸너리와 상여소리에 곧 잘하시던 그 끼를 돈버는 재주대신 물려 주시여 그나마 요렇게 살 수 있게 하신 모양이다.
둘째 아내를 만나 것이 다행이다. 나에게 인연이 되어 준 이유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요량으로 점지하여 주었나 보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내 몫까지 경제적으로 가정적으로 뒷바라지 해준 덕에 요만큼 살고 있음을 감사한다.
셋째 자식 복이 빠질 수 없다. 딸 있으면 비행기 탄다는 소리가 딱 맞다. 부모의 성격을 좋은 부분만 닮은 것 같고 아직까지는 정신이 맑고 우리의 의도에 잘 따라주고 이해 해주는 아이들 덕에 요렇게 근간을 이어가고 있다.
국악이 내게로 오면서 국악가족을 만들겠다고 계획하지도 의도하지도 않했지만 사연은 이렇다.
큰 아이는 중학생때 내가 문화재 선생님에게 공부하는데 따라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재능을 보여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고 막내는 초등학교 1학년때 내가 시조를 배우는 곳에 엄마 손잡고 따라 갔다가 시조를 시작하였고 이어서 판소리를 시작하였다. 둘째 아이는 중학교 졸업때까지는 국악에 관심도 없어서 큰아이와 막내가 대회나 행사를 가게되면 집에만 있는 외톨이 신세였는데 졸업 무렵부터 식구들의 권유로 시조와 경기민요를 하더니 언니의 권유로 거문고를 전공하고 있다. 이러듯 식구들은 한 방향으로 가니 아내도 동참하는 차원에서 시조 경기민요 그리고 무용을 열심히 연마하고 있다. 국악가족 구성으로 생각지도 않던 가족 발표공연, 가족 행사 초청공연 해외 공연에다가 국비 지원으로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다.
이렇듯 5명의 가족들이 대회에서 크고 작은 상만 해도 100여장이 되어간다.
덕분에 집안 분위기는 더욱이 모두의 관심사가 국악이라 소통이 잘된다. 행사나 대회등에 있어서 가족회의를 하며 서로의 역할이나 분야를 논의하곤 한다.
모든 일은 예술적 내공이 바탕 되어야 하기에 각자 배움에 정진하며 나도 지도하는 일보다 배우는 일에 매진중이다.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우면서도 배우고 싶은 것이 예술이다. 온 식구가 예술에 정진하다보니 경제적 어려움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짐작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인으로 갖추기 위해서는 배우는일 밖에 없다.
어줍잖은 문화예술인으로 사는데 이는 내가 하고 싶어도 여건이 안되면 못하는 것이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재주가 없으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좀 특이하게 한 방향을 바라보는 경우인데 아이들이 지금은 학생이고 성장하는 단계여서 앞일은 추측할 수 없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을 가는 일이 걱정스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예술인이 되기 위한 또 다른 첩경이 되지 않을까 애써 위안을 해보기도 한다.
누구나에게 가족이란 기본이면서도 한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가족으로부터 위안을 느끼며 평안을 찾고 서로에게 기둥이거나 힘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꼭 거대한 뜻을 이룸이 아니더라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소소함, 그리고 함께 어울려 살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행복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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