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번화가의 중심지였던 옛 함열극장 자리는 현재 문이 굳게 닫힌채 방치되어 있는 상가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 ⓒ 익산신문 | | 익산시 일부 부서의 함열청사 이전계획이 무산된 지 20일이 지난 16일 오전 함열시장 주변은 적막감만 흘렸다. 시장통 분위기는 온데 간데없고 절간처럼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시청 9개 부서가 함열로 이전되면 경기가 좀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던 주민들의 실낱같은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박경철 시장 공약사업이지만 사전 협의가 전혀 없이 추진된 사업이라며 도심지역 시의회들의 반대로 물거품이 됐기때문이다. 익산과 이리 통합 약속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체 18년이 흐른 지금, 함열 주민들에게 또 한 번 ‘배반의 쓴잔’먹인 꼴이다. 이로 인해 정책적 소외와 피해 본 주민들의 반발세가 커지고 있다. 그들은 신뢰할 수 없는 지역정치권을 향해 비난의 목청을 높였다. ‘반드시 함열 청사 이전을 관철시켜 것이라고....’
애들 장난도 아니고 … 함열 시장에서 20년째 낙원떡집을 운영하는 강정숙(66)대표는 대뜸 화부터 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주민들은 함열 청사가 이전되면 음식점, 시장 등에 돈이 좀 돌아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근데 그 희망이 무너져 절망의 신음소리가 골목마다 가득하다. 누가 옮겨달라고 했나. 언제는 해준다고 했다가 이제는 못해준다고 했다가……. 얘들 장난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는 불만의 화살을 쏟아냈다.
익산군과 이리시가 통합되기 전에는 장날이나 보통날이나 손님들이 줄을 서서 떡을 해 갔다고 한다. 그 힘으로 네자녀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시집,장가를 보냈다는 그는 지금, 그 당시의 매출과 비교하면 1/10수준이란다. 당시 일주일 벌 돈을 지금은 한 달 동안 벌기도 어렵다는 푸념이다.
떡집 건너편에서 15년째 형제상회를 지켜 온 오희석(66)씨도 ‘함열 청사’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얼굴을 붉혔다. “인구는 계속 줄고 대형마트는 계속 생기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역이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시장에서 사람구경조차 할 수가 없다” 그 또한 끊어진 매기를 한탄했다. “요즘 장사하는 게 아니라 노는 것이다. 이나마 내 집이니까 하루에 1만원 벌어도 가게 문을 열고 있다. 익산시에서는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옆가게는 문을 내린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모르지만 문고리에 녹이 다닥다닥 쓸어 있다.
|  | | | ⓒ 익산신문 | | 발전은 고사하고 퇴보만 역전동 이장인 장석규(58)씨는 함열 토박이다. 전에 이 일대는 으리으리한 부자동네였다고 소개했다. “신임 시장은 뭐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공수표를 날리는 것을 보니 똑같다”며 “한 번 더 시장을 하려면 알아서 처신해야 할 것”이라며 응어리 찬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요구하지도 않은 함열청사을 운운하는 바람에 주민들 상처만 키웠다는 것이다. 발전은 고사하고 퇴보하는 함열을 이대로 볼 수만 없다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함열에서 가장 큰 길인 23번 국도 주변은 마치 영화세트장 같았다. 800미터 길 양쪽으로 늘어선 빈 가게는 70년대 생활상을 연상케 했다. 서너 집 걸러 한 집꼴로, 가뭄에 콩나듯 문 연 가게에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가에서 고추를 말리는 한 할머니는 “시장이 공약했으니까 지킬 것여....부서 이전도 안 해 보고 효과타령만 해서 되겠느냐”며 사업추진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동네 개도 수표물고 다녀 북익산농협사거리에서 만난 이화웅 주민자치위원장은 돈도 많고 사람도 많았던 80년대 함열을 그리워했다. 그는“익산군청이 있을 그 당시, 함열 주민은 1만2000여명였다. 가게마다 장사가 다 잘 돼서 돌아다니는 동네 개도 10만 원짜리 수표를 물고 다닐 정도였다”며 그때의 향수에 젖었다.
“군청사를 짓을 때 주민들이 땅을 희사하고 건립비용을 기부했었다. 지금이라도 기숙사로 쓰고 있는 원광보건대 건물을 주민들이 돈 모아 매입해서라도 시의 일부 부서를 반드시 옮겨야 할 것이다” 이 위원장은 함열 청사 이전 의지를 불태웠다. 18년 전 통합시가 출범할 즈음, 시에서 감정가가 32억인 군청사를 반값인 16억에 원광보건대에 넘겼고 그 후 출장소마저도 한 밤중에 도망가듯 시내로 이사 갔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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