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 영 규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익산지회장 | | ⓒ 익산신문 |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주루룩 쏟아질 것 같은 곳이 있다. 바로 고향이라는 곳이다. 고향! 언제나 잊지 않고 생각하는 그리운 나의 고향, 거기에는 새끼줄 굵게 매어 그네 뛰던 늙은 정자나무도 있고 진달래 피고 도라지 캐던 낯익은 산이며 송사리 잡고, 논둑길 따라 달빛을 한아름 머금고 취해 있던 언덕도 있었다. 개울가 징검다리하며, 구부러진 우물길이며 아카시아 꽃 따먹고서 배 아파 뒹굴던 잔디밭도 있었다.
해가 가고 날이 갈수록 더욱 그리워지고, 지나간 그 화폭(?幅)들이 점점 더 보고 싶어만 간다. 지금도 그대로 있을까? 보고 싶은 그 때 그 얼굴들이 그냥 있을까? 잊혀지지 않는 향수! 이것도 아마 조물주가 내려준 커다란 병인지도 모른다. 가봐야 오늘에 와서는 별로 신기하지도 않을 것이니, 이것도 오십대 이상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고향부재(不在), 고향상실(喪失),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한다.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 가을의 문턱에 고향으로 가는 길이 막혀서 주차장으로 변해간다. 추석(秋夕)이 코 앞이다. 추석은 음력으로 8월 15일에 해당하는 날인데, 예년에 비해 십여일이 빠르다고 한다. 중추절, 한가위, 가윗날 등 다양하게 불리우는 우리 고유의 명절이라 알지만, 정확한 유래에 대하여는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없다. 봄, 여름에 열심히 농사지어 햇곡식을 수확하여 술을 빚고 떡을 만들고 닭을 잡아 반찬을 만드는가 하면, 오색(五色) 과일로 제사상을 차려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고 성묘하는 날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는 조상의 은혜를 잊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섬기는 아름다운 풍습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고향을 찾는 여러 가지 구실 중 하나였다.
추석의 풍속에는 감사하여 지내는 제사도 있지만 방안에서 지내는 차례와 산소에 가서 지내는 성묘, 벌초, 아직 덜 익은 풋콩을 넣어 송편을 만들고, 아직 덜 여믄 이른 벼를 베어 올겨쌀을 만들었다. 차례가 끝나면 성묘를 하고 일부는 농악을 치며 즐겼다.
강강수월래는 남해안 지방에서 시행하던 부녀자의 놀이인데 임진왜란 때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는 경상도의 “쾌지나 칭칭나네”와 같은 성격을 지니는 풍습이다. 소먹이놀이, 줄다리기, 씨름, 밭고랑치기, 지게목발춤원놀이, 소싸움 등 “세시풍속이야기”(한호철 저, 신아출판사 2014) P229~243에 보면 다정하고도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중추절 즉, 8월 한가위는 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임이 틀림없다. 힘든 농사일이 끝나가고 많은 수확으로 기쁨을 누리기 때문에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과 같이 서로를 배려하는 때이기도 한다.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아 이동하는 많은 사람들은 애써 길러낸 곡식을 서로 나누고, 풍년이 들도록 도와주신 조상님께 감사의 차례를 지내려는 행렬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애착도 타고난 부드러운 감정도 이미 사라져 버린 현상이 오늘이 아닌가 한다.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도시로, 도시로 빠져 나가고 근대화로 인하여 그 풍속과 풍류, 낭만이 식어버렸다. 고속도로, 철도가 생기면서 신비한 자연은 사라지고 커다란 댐 건설로 고향마을은 없어졌다. 이사가고, 학교가고, 군대가고, 유학가고, 이민가고, 급격한 변화의 물결 따라 그 추억의 비경이 파열되고 말았다.
인간들은 오늘처럼 편하게 살도록 하여 고맙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량한 본질을 변화시켰고 그 아름다운 정취와 낭만, 풍류와 멋을 빼앗아간 현실을 우리는 확실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금권의 노예가 되어 고향의 향수도 깨어지고 부모형제간의 우애도 없어진 채 많은 세월이 지나간다.
정말이지 노랗게 물들어 가는 지평선 너머 추석이 살아진다.
/김 영 규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익산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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