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민수 시인 · 국악예술원 소리뫼 대표 | | ⓒ 익산신문 | 피할 수 없는 여름이 왔다. 그래도 4계절 중에 한축으로 지나감에 다행이고 이 여름을 넘긴자 만이 황국단풍을 느낄 기회가 있다는 점에 힘을 얻는다. 길가에 흐트러진 개망초, 담장을 수놓은 장미, 허름한 담을 오를수록 정겨운 담쟁이,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것들이이 여름의 한 축을 수놓는다. 이럴 때 누구나 여름 들녘에 나가면 한 움큼씩 유년의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들판 끝자락에 배꼽같이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다. 그때는 눈뜨면 들판 너머로 어디든 훤히 보일정도였다. 그 들판의 일을 도맡아 하던 소는 집안의 재산 밑천이요. 지금의 기계적인 농사일을 해주는 논벌이로 유용하던 고마운 존재였다. 아버지의 유일한 기술은 소 모는 일이다. 농번기에는 쟁기질을 시작해서 가을에 등짐으로 온 식구를 먹여 살린 고마운 가족 같았던 존재였다.
학교에 다녀오면 숙제보다 더 급한 것이 소띠낀다는 소먹이는 일이었다. 허기진 배를 부엌 위에 대롱거리는 소쿠리나 광주리에서 말라가는 꽁보리밥과 신 김치로 채우고 소를 몰고 나가 풀을 먹이는 일을 보통 한 시간 이상을 산과 논, 밭두렁으로 몰고 다녀야 한다. 아침이면 쌀겨와 싱싱한 풀 그리고 야채 등을 석어 소죽을 끓여 주시는 아버지는 신선한 먹이를 먹여야 한다고 고집하시는 통에 소와 둘이서 들녘을 보내야 했다. 소 풀 먹이는 일이라도 거들지 않으면 저녁밥도 얻어먹지 못할 것 같은 일상을 피하려 혼나기도 일쑤였다.
해가 어둑해질 무렵 집에 들어서면 어머니 부엌에는 저녁이 기다린다. 동목 후에 감미료를 넣은 시원한 물 한 그릇으로 목을 축이고 나면 밥상에는 때로는 동네 국수 공장에서 사온 국수, 고구마밥, 무밥 냄새가 흐트러지고 때로는 동네 잡아온 돼지고기 국이 기다린다. 아버지는 외양간에 모깃불을 놓으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선풍기도 구경하기 힘든 시절 비료 푸대로 만든 부채와 모깃불로 무장한 식구들은 낮에 동네 과수원에서 사온 수박, 참외 복숭아등이 우물물에서 열을 식히고 있는 동안, 마당 멍석에서 먹었던 음식은 흉내 낼 수 없는 추억속의 맛이 되었다. 식사 후에는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온 식구가 벌러덩 누워 팔베개를 하고 하늘을 바라보면 머리위로 쏟아져 내릴 듯한 별을 바라보며 미지의 미래를 그렸었다.
사실 방학이 시작되면 먼저 해야 하는 행사가 있었다. 친척집 방문이다. 하지만 친척 집 가기란 간단한 행사가 아니었다. 나의 집을 나서 논길 신작로까지 3~4 km를 걸어야 외가 집에 갈 수 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꽤 먼 거리인 그 길이 그 때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깝게 재미있는 도보였다. 또래의 사촌 아이들과 만나면 놀다보면 힘들었던 여정도 잊어버린다. 그렇지만 마냥 즐겁기만 했던 시간도 이틀만 지나면 이내 엄마가 보고 싶어져 집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방학 끝날 무렵, 숙제는 지금은 아이들에게 생소한 식물채집 곤충채집이다. 식물을 캐다 책갈피로 눌러 판에다 붙여 만들었고 잠자리, 사마귀, 방아깨비 등을 잡아 방학숙제를 하였다.
그렇게 유년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먹고 사는 게 못 미치더라도 다시 돌아가고프지만 이젠 도리가 없다. 갈수록 멀어져도 희미해지는 일을 어찌 할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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