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박찬웅 국립종자원 서부지원 농업연구사 | | ⓒ 익산신문 | 식물의 꽃은 동물로 비유하자면 생식기에 해당합니다. 수컷 생식기 역할을 하는 수술이 있고 암컷 생식기 역할을 하는 암술이 있습니다. 수술에서 나온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닿아 일련의 절차를 거쳐 수정이 이루어지고 자궁(子宮)에 해당하는 씨방에서 후손인 종자가 맺히는 것입니다. 형형색색 꽃의 아름다움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식물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은 관음증에 걸렸다고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물은 주로 암컷과 수컷이 따로 있지만 식물의 성(性)은 좀 더 다양한 양상을 보입니다.
암수가 같은 몸에 있는 암수한몸이이 있고 따로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암수한몸은 다시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같은 꽃에 암술과 수술이 모두 있는 것이 있습니다. 벼, 보리, 콩, 고추, 무, 배추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한몸에 암술과 수술이 있지만 한 몸중 어떤 꽃은 암술만, 어떤 꽃은 수술만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옥수수, 수박, 오이, 호박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한편 시금치와 같은 작물은 암수가 따로 있습니다. 즉 어떤 시금치는 암꽃만 있고 어떤 시금치는 수꽃만 있습니다.
지금은 생각할 수 없지만 과거 인간 역사를 보면 특수한 계급에서는 자신들의 권력과 혈통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을 유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친혼은 유전적 열성 개체를 낳을 확률이 높아 불임, 기형아 출산, 정신장애 등 생물학적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같은 현상은 식물에게도 적용됩니다. 자기의 수술에서 꽃가루를 받아 수정해서 생기는 종자(후대)는 세력이 약해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무, 배추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작물은 암수 한몸 그것도 같은 꽃에 수술과 암술이 있기 때문에 자기 꽃가루를 받을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근친혼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조물주는 다른 방법으로 이러한 수정을 막고 있습니다. 즉 자기의 꽃가루가 자기의 암술에 닿을수는 있지만 수정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반응이 내부에서 일어납니다. 다른 개체의 꽃가루를 받아야 수정이 되는 것이고. 근친혼을 통해 후대의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벼, 보리, 콩은 같은 몸, 그것도 한 꽃에 암술과 수술 모두를 갖추고 있고 꽃의 구조도 암술과 수술을 에워싸고 있거나 수술이 암술위에 있어 꽃가루가 자연스럽게 암술머리 위로 떨어지도록 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즉 근친혼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작물의 경우에는 이상하게도 근친혼에 의해 후대가 약해지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런 걸 보면 다양한 자연현상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식물의 은밀한 성은 우리 인간들에겐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970년대 녹색혁명을 통한 식량자급의 중심에 섰던 통일벼는 키가 작고 수확량이 많은 인도형 벼를 기존의 우리 유형의 벼에 인위적으로 꽃가루를 묻혀 교잡시켜 만든 품종입니다.
우리가 자주 들어본 대학찰옥수수, 청양고추, 노란속 배추, 노란수박, 대추토마토, 금싸라기참외 등 거의 모든 품종들은 전문가가 작물의 혈통을 보고 인위적으로 우수한 혈통끼리 교잡시켜 만든 품종입니다. 이렇게 만든 식물 품종은 일종의 지식재산이기 때문에 국립종자원에서 이러한 신품종을 보호해주는 업무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2014년 5월말 현재 5,000여 품종이 지식재산으로서 등록이 되어 있는데 이러한 수준은 세계 8위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물론 신품종을 만드는 방법이 위에서 말씀드린 인위적인 교잡뿐아니라 다른 방법도 있지만 대다수 품종이 인위적 교잡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품종개발에 있어 식물의 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최근 과도한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습관 등으로 불임부부가 늘고 있습니다. 생식세포가 다른 부위에 비해서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식물도 마찬가지로 생식기인 꽃은 다른 부위에 비해 민감한 곳 입니다. 꽃에 있는 암술, 수술은 기온 등 환경에 민감합니다. 기온이 높거나 낮으면 불임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종자생산이나 식량생산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우리의 주곡작물인 벼의 예를 들겠습니다.
우리는 1980년 유례없는 벼 냉해로 쌀 생산량이 전년도의 2/3수준으로 급감하여 민심이 흉흉하게 되었고 정부는 외국의 대형 곡물기업에 구걸하다시피 쌀을 구해왔는데 우리는 갑을관계에서 을의 입장이라 국제시세의 2.5배를 주고 들여왔다고 합니다. 당시 냉해는 7~8월에 북쪽의 찬 기운이 남하하여 평년치보다 2~3도 낮은 저온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때는 벼 꽃이 개화하여 수정이 일어나는 시기로 벼의 생식기가 저온으로 인해 불임이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냉해라고 하면 영하의 기온을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벼는 6월부터 암술, 수술이 생기기 시작해서 7월 하순부터 8월에 벼꽃이 개화하고 수정이 이루어지는 생식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생식현상이 일어나는 시기에 2~3도만 낮아도 식물의 생식기는 큰 피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식물의 생식기는 저온뿐 아니라 고온에도 민감하여 기온이 높아질수록 불임이 많아집니다. 지난 100년동안 한반도 기온은 1.8도 상승했다고 합니다. 특히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80년후에는 연평균 기온이 3.7도 정도 상승한다고 합니다. 대수롭지 않은 수치인 것 같지만 평양과 서귀포의 연평균 기온차가 4도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큰 수치입니다. 앞으로 종자생산이나 식량생산이 걱정되는 이유입니다.
국립종자원에서는 벼, 보리, 콩 등 우리나라 주요 식량작물의 종자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농업인이 필요로 하는 종자량 모두 생산해서 공급하면 좋겠지만 국립종자원의 제한된 자원으로는 이를 충족하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동안 자원의 효율적 활용 노력을 통해 벼는 현재 소요량의 50~60%정도까지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는 종자생산에 주요한 위협요인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립종자원에서는 종자생산지에서의 식물체 검사나 종자검사를 통해 우수종자를 농업인에게 공급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앞으로 우리나라 식량작물 종자의 안정적 생산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식물의 은밀한 성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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