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택회 익산교원향토문화연구회장, 가람기념사업회부회장, 전북불교문학회장 | | ⓒ 익산신문 | 전주하면 한옥마을, 한정식, 한지, 판소리 등을 앞세워 한국적인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군산은 개항과 더불어 형성된 근대도시로서의 면모를 근대유산으로써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익산은 어떤가?
익산시민들에게 물었더니 ‘깡패도시’라는 말이 나왔다. 그동안 익산을 여러 모로 홍보해 왔지만 깡패도시라는 말은 아직도 익산의 이미지에 생채기처럼 남아 있다.
1912년 호남선과 군산선이 익산까지 연결되고, 그 뒤 호남선이 남쪽으로 더 열리고, 1914년에 전주까지 철길이 연장되면서 익산은 사방으로 철길이 뚫린 교통의 도시라는 이름을 얻는다. 교통이 편리하니 주먹깨나 쓰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모이고, 끝내 이것이 익산의 이미지로까지 굳어져 버렸다. 그러나 교통이니 깡패니 하는 것이 익산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익산의 정체성은 어디서 찾고, 앞으로 익산을 위해 어떤 일을 해 나아가야 할까? 주변 도시의 사례를 보자.
전주는 전주역사박물관 주관으로 전주학 시민강좌를 12번째까지 실시했다. 군산은 2012년부터 군산대를 중심으로 군산학 강의를 열고 있다. 충남 아산시는 아산시와 아산학 연구소 주관으로 2010년부터 관내 3개 대학에서 아산학 특강을 정규 교과목으로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익산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미륵사지를 중심으로 한 마한백제 시대의 역사를 연구하여 이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쌓고, 미륵사지가 익산의 얼굴이 되도록 하고, 나아가 익산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까지 오르도록 한 공로가 있다. 하지만 마한백제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그 이전과 이후의 역사는 소홀히 다루어 익산의 역사가 이어지지 못하게 해 버린 아쉬움이 있다.
익산은 고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이 기원전 194년에 금마에 와서 ‘한(韓)’의 왕이 된 곳이다. 이 한이 건마국→마한→백제→후백제→통일신라→고려→조선→대한제국→대한민국으로 연결이 된다. 국호(國號) 대한민국도 익산에서 비롯된다. 곧 익산은 대한민국의 뿌리다. 그러나 익산은 고조선, 마한, 백제, 보덕국의 수도이기도 했지만, 그저 백제 시대 때 잠시 수도로만 잘못 알려져 있다. 그나마 그것도 일부 시민들만이 알고 있다. 이에 익산이 대한민국의 뿌리이며, 22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자랑스러운 도시임을 홍보하고 교육함으로써 익산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할 필요가 있다.
이런 활동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익산학(益山學)’이다. 익산학을 만들어 고조선까지 역사를 소급해야 하며, 백제 이후의 역사에도 관심을 가져 익산의 역사와 문화가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또한 익산인이 쓴 역사서, 향토지, 각종 문집, 예술인들의 작품 등 익산인의 사상과 감정을 담고 있거나, 익산이 자랑할 만한 작품을 모아 전시하고 교육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들 자료를 모으고, 목록을 작성하고, 전시하고 교육할 공간도 마련해야 한다.
덧붙여 국립익산박물관도 조속히 추진하고, 익산시 조례에 따라 ‘가람시조문학상’을 33번째까지 시상한 도시인 만큼 여산면 가람 이병기 생가 옆에 ‘시조문학관’도 건립하여 문화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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