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정훈 원광대 가정아동복지학과 교수 | | ⓒ 익산신문 | 만개한 꽃 속에서도 추웠던 날들이 가고 산 사람은 산다는 할머니 말처럼 엄마는 네 중간고사 결과지를 받고, 숫자로 이름 지어진 너를 본다.
내 눈앞에 웃는 너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던 마음이 꽃잎처럼 흩어 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정말 미안하구나. 네 친구들을 그렇게 보내서.
네가 물었지? ‘미안하다는 말이 적절한 단어야?’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 이상 더 우리 마음을 표현할 말이 없어. 네 친구들에게 그리고 그 가슴 저릴 엄마들에게 오직 그 말밖에는 할 말이 없구나.
누군가 ‘미안한 건 선장이고 선원들이지 왜 우리가 미안하냐?’고 하는 애도 있더라.
우리는 네 친구들을 그렇게 가게 한 시스템 속 일원이어서 친구들 엄마들이 가슴 저리게 아이를 잃게 한 시스템 속 일원이어서 우리 모두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해 미안해. 우리는 그런 선원들이 배를 모는 중요한 일을 하게 해서 배가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과적을 눈감아주는 그런 시스템 속에 너희를 있게 해서 미안하구나. 우리는 잘 못된 일을 직접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했다고 한단다.
아무 것도 안한 것도 우리는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니까. 잘못되어 가는 것을 알고도 아무 것도 안한 것도 잘못이고 잘못돼 가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잘못이야.
우리는 항상 우리가 사는 이곳을 돌보고 바르게 되도록 해야 하거든.
너희가 잘못하거나 아프면 엄마들이 그러잖아. ‘내 잘못이야. 내가 잘못해서 그래’ 그런 것과 같아.
만일 아무 것도 몰랐어도 일이 생기고 잘못이 드러나면 우리는 그런 이유로 책임을 느끼고 책임지는데 스스로에게 면책을 주고 소홀해서는 안돼.
‘희생이란 말은 누군가를 위해서 죽거나 했을 때 쓰는 말이 아닌가?’라고도 물었지?
희생은 자신이 의지를 갖고 누군가를 위해서 행동을 할 때뿐만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이 잘못됐을 때도 쓴단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저지른 잘못 때문에 원하지 않았던 길을 간 것이거든.
그래서 우리는 미안하다고 하는 거야. 이런 말도 있어. ‘알고 저지른 죄보다 모르고 저지른 죄가 더 크다’고. 모르고 저지르면 그 결과가 얼마나 큰지 모르기 때문에 더 크다는 말이래. 우리가 ‘몰랐어’ 라고 하면서 면죄받을 수 없는 이유라고 생각해.
엄마가 ‘애가 아픈 줄 몰랐어’라든가 ‘애가 나쁜 짓하는 줄 몰랐어’라며 ‘난 열심히 엄마 노릇했는데 애가 잘못이야’라고 할 수 없는 거잖아?
정말 미안해.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이렇게 허망하게 아이들을 보낼 정도로 너무나 많은 곳에서 부실하다는 것에 미안하고 기막히면서도 앞으로 나갈 용기를 얻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가진 공감능력과 우리에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 그리고 너희 친구들이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보여준 배려와 사랑함과 따뜻함이야.
너희는 우리 모두의 사랑 속에서, 선생님들의 보살핌 속에서 그리고 너희의 따뜻한 용기로 살고 있구나. 너희 친구가 배 속에서 끌어준 손, 벗어준 구명조끼는 네게 내민 손이고 넌 그 구명조끼를 입은 거야. 살아있는 우리는 참 해야 할 책임이 많구나.
엄마는 지금껏 기도할 때 ‘우리 아이 순탄하고 마음도 몸도 힘들지 않게 살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이제 좀 힘들게 살게 해달라고 빌려고 해. 조금 힘들게 더 많이 주위에 신경쓰고 잘못된 것 바로잡고 내 일로 여기면서 살도록 말이야.
20여년 전 우리가 너희만큼 젊었을 때, 큰 다리가 무너지고 큰 백화점이 무너지고 배가 침몰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고 지금과 거의 똑같은 문제들이 지적됐었어. 그런데 우리가 너무 편하게 살아서 남의 일로 여기고 살아서 지금 우리의 아들, 딸을 잃는 아픔을 겪는구나.
너희는 조금 힘들어도 20년 후에 우리 같이 마음 아픈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정훈 원광대 가정아동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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