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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나무야 너도 전에는 작았구나
이솔잎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14년 03월 18일(화)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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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광대학교 가정아동복지학과 교수
ⓒ 익산신문
버어마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시장에서, 거리에서, 바닷가에서, 절에서, 집 앞에서, 공원에서 다양한 나이와 다양한 모습의 아이들과 젊은 이들을 만났습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엄마 옆에서 매달려 있는 아이, 직조기 앞에서 천을 짜는 예쁜 소녀, 농기구를 팔며 수줍은 미소를 보이는 맑은 어린 소녀,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학생들, 우리를 은근히 속였던 어린 뱃사공, 등록금을 벌기위해 마차를 몰며 하루 2만5천원을 버는 대학생, 터미널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능수능란하게 제 차에 태우는 씩씩한 소녀, 부처님 앞 꽃병의 물을 갈고, 관광객들에게 사원을 가이드하는 소년, 그리고 버어마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교육운동을 한다는 시민단체 청년 활동가들과 어린 스님들...

우리 아이들과는 다른 듯한 삶을 사는 이들도 쌍쌍이 공원에서 데이트를 하고, 핸드폰에 머리를 박고 있고, 한국 드라마 속 주인공이름을 따 말 이름을 짓고,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를 하며 놉니다. 머리에 물도 들이고, 엄마 품에서 잠들고, 길에서 족구 하고, 유럽프로축구단 옷을 입고... 엄마와 동생들 얘기를 나누며 마부청년은 눈물을 머금었고, 나무조각을 해 팔던 멋진 예술가 청년은 깎아 달라는 말에 곤혹스러워하며 힘든 표정으로 답을 주었습니다.

여행을 함께 한 친구가 “이 애들과 우리 애들 중에 누가 더 행복할까?” 하고 묻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고등학생 아들은 그동안 어떻게 공부했는지, 2학년은 어떻게 공부해야 한다고 하더라는 얘기로 반가움을 표시했습니다. 새 학기를 맞은 아들을 한의원에 데려갔더니 “너 너무 피곤하구나. 참 쉬라고도 못하고 어쩌냐? 잠은 언제고 제 몫을 가져가니 집중을 해서 하고, 잘 수 있을 때 자. 다른 말이 없네” 하십니다.

우리 애는 내가 버어마에서 본 아이들보다 잘 입어 멋지고, 먹고 싶은 건 다 먹고, 등록금 걱정하지 않고 학교 다니고, 점심은 나라가 먹여줘서 도시락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아침 일찍 일어나 시장에 가지도 않고 학교만 다니는데, 너무 피곤하다고 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이 애들에게 무얼하고 있는 걸까요?

버어마에서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가 함께 있는 모습은 우리 어릴 적을 보는 듯 했습니다. 이들은 가난하지만 관계를 즐기고, 함께 돌보고 있었는데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즐기고,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고 있을까요?

버어마 길을 걷다 담너머 눈에 띤 작고 초라한 바나나 나무는 내게 또 다른 말을 했습니다. 난 지금껏 바나나 나무는 바나나 송이를 따기 위해 힘들게 나무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엄청나게 큰 나무로만 생각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천장지구(天長地久)란 말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의지만 가지고 간섭하는 주체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이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체일 뿐이다”라는 뜻이라는데, 노자는 ‘한 발짝 물러서라. 그러면 오히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한 발짝 밖으로 비켜서라. 그러면 오히려 안에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바나나 나무야! 난 네가 이렇게 작은 적이 있었을 거란 생각을 못해봤어. 네가 나보다 훨씬 키가 작은 꼬마인 적이 있구나” “이제 내가 해를 가리지 않고, 바람이 지나가게 하면서 물을 주며 기다리면 되는 거지?” 아들이 독후감에서 ‘천장지구’를 지적한 것은 내게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을 아닐까요?


 

이솔잎 기자  i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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