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전대영 대한노인회익산지회장 | | ⓒ 익산신문 |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 등 격변기를 지나오며 큰 혼란을 겪었고 이후 급속한 경쟁성장과 더불어 진행된 서구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영향으로 수 천 년간 이어 온 전통적 가치규범이 붕괴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경로효친(敬老孝親)'이다. 효는 예의를 숭상하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근본적인 가치였으며, 가부장 중심의 대가족 제도에서 가정의 질서와 한 개인의 인격적인 기준으로 자리잡아 온 보편적인 생활 규범이었다. 노인은 가정 내의 최고 권위자로서 그 노후를 보살피는 것은 자식의 당연한 의무였으므로 경로효친은 우리사회를 지탱해 준 정신적 지주였다.
효는 신라의 국학에서 논어와 함께 효경을 필수로 가르치기 시작한 이래로 고려, 조선조를 거치면서 국가와 사회, 가정에서 가장 우선해서 가르치는 과목으로 정착해 왔다.
공자가 제자인 증자에게 효도하는 방법을 설명한 내용을 담은 ‘효경’ 에 따르면 ‘무릇 효는 덕의 근본이며, 모든 가르침은 여기서 시작 된다’ 고 했다. 또한 '만물이 천지에서 받은 성품 중에서 사람이 제일 귀하고, 사람의 행실 중에 효도보다 더 큰 것은 없다'고 함으로써 유교의 본질은 효이고, 효는 인간 행동의 근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효친과 경로사상은 국가에 대한 충 사상과 더불어 우리 전통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으로 자리 잡아 온 것이다.
효와 관련된 우리의 가장 오래된 기록인 삼국사기에는 신라 제3대 유리왕 5년사에 '자치능력이 없는 노인들을 위문하고 식량도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과 '부모 봉양을 위해 자식의 몸을 팔았다'는 등의 사례가 실렸다.
고려시대에 이르면 노인구호 대책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광범위하게 실시되었음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고령자에게는 직위와 연령에 따라 부합하는 벼슬을 주고. 식량과 비단을 하사하는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승상하는 정책에 따라 효와 경로가 더욱 강조 되었으며, 노인구호정책도 다양하게 시행되었다. ‘노인직’이란 벼슬제도를 두어, 80세 이상이 되면 신분에 관계없이 벼슬을 내리고, 관직에 있었던 사람에게는 한 계급을 올려주는 등 예우를 했다.
노약자나 고령의 부모를 모시는 외아들에게는 부역이나 군역을 면제해 주고 봉양해야 할 부모가 있는 사형수는 감형을 하는 등 노인우대, 부모봉양 기풍을 앙양하기 위해 제도적 노력을 기울였다.
1939년 3월에는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사회사업개요‘ 에 따르면 당시 전국에 6개의 양로원에 58명이 수용되어 있었다고 한다.
1944년 3월에는 ‘조선구호령’ 이 공포되어 극빈자와 무의탁자를 구호했으며, 1961년도에 만들어진 것이 사회보장법이고, 이는 대한민국 최초의 사회보장관련법이었다.
‘21세기의 태평양시대에는 동아시아에서 세계를 지배할 사상이 나올 것’이며 ‘인류문명에 가장 크게 기여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의 ’효‘라고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는 간파한 바 있다. 우리의 전통적 효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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