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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의 대가 강암 송성용선생의 막내딸로 익산에 살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이당(怡堂) 송현숙(66) 선생을 만나기 위해 19일 남중동 이당서실을 찾았다. 이당(怡堂)이란 호는 온화한 성품으로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가며 살라는 의미로 선친인 강암선생이 지어 주신 것. 은은항 묵향이 퍼지는 서실에서 만난 이당은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그의 작품과는 달리 자그마한 체구에 차분한 말투로 단아한 인상을 주었다.
71년에 국전에 입선하면서 서예가로 활동하게 된 이당은 "선친께서는 서예가의 길이 힘들다며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서예를 가르치지도 않고 못하게 하셨다"며 "그렇지만 나는 서예가 좋아 밤에 몰래 먹을 갈아 아버님 글씨를 베껴가며 연습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익산에서 학생들이 찾아와 선친에게 배움을 청하자 "이렇게 멀리 힘들게 오지 말고 익산에 내 딸이 있으니 거기로 가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집안에서 같이 공부하게 된 것이 오늘의 이당서실의 시작이었다.
40년을 훌쩍 넘기면서 공부를 이어 오고 있는 이당은 "강암 제자 모임인 연묵회전에 45년간 한해도 쉬지 않고 출품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자부심이다"며 "그 말은 즉 붓을 잡은 이래로 쉰 적이 없다는 뜻으로 나에겐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가 아이 셋을 둔 주부로 살면서도 부단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남성고 교장으로 퇴임한 부군 정봉화 씨의 열렬한 지지와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혼 초기엔 안방에서 글씨 공부를 해서 화선지가 뒹구는 속에 잠을 자기가 일쑤였다"며 "그런데 남편은 말리기는커녕 독서도 게을리 하지 않도록 재촉을 하더라"면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돌아 나오는 길에 가정집 정원에서는 키우기 힘든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 물었더니 결혼 당시 선친께서 난초와 대나무처럼 살라고 주신 것으로 71년부터 지금까지 선친의 뜻을 간직하며 소중히 다루고 있다고 했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 이당이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라는 구절이다.
언제나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가져야 법고창신을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80이 넘은 나이에도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던 강암 선생의 모습에서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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