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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 사이
이솔잎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14년 02월 12일(수)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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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광대학교 미술과 교수/대외협력처장
ⓒ 익산신문
2014년이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설 연휴에 달력 첫 장을 넘기다보니, 올해는 또 얼마나 빠르게 지나갈까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월이 빨리 날아간다는 표현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용되는 것 보면 모두가 공감하는 듯싶다.

이 나이즈음 되면 인생의 남은 날들을 계수하면서 사는 지혜가 저절로 생기지 않을까하고 예전에 기대했던 것이 생각나서 그 철없었음에 피식 웃다가, 지혜까지는 바라지 못해도 어리석게 살지는 않아야 할텐데 다짐도 해본다. 가령 예전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코 지나쳤던 들꽃 하나도 눈여겨보고, 빠름보다 느림이 주는 풍성함을 향유하려 해본다. 또한 이만큼이라도 철든 상당부분이 대학에서 십 수 년을 재직한 덕이다 보니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기보다 학생들이 나를 더 잘 가르치지 않았나 싶어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러다보니 취업난에 시달리는 제자들과 더불어 내 이상을 점점 내려놓게 된다.

날아가는 시간에 대해서도 그렇다. 지금 나라 전체를 들썩이고 있는 개인정보 수집 및 유출과 연관하여 카드, 대출, 보험 등 텔레마케팅 전화를 받는 동안 ‘날아가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자. 일부 카드사들에 고객정보 불법유출 및 유통과 관련해서 당분간 텔레마케팅 금지조치가 취해지자 “어떻게 먹고 살라고”라는 탄식이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사실 이 정도의 개인정보 불법유출 사건이 이제야 터진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미국생활 십수년 후 귀국해서 한국사회에 재적응하면서 매우 이해하기 힘든 것 중 하나가 불시에, 너무도 당당하게 걸려오는 텔레마케팅 전화들이었다. 왜 우리정부는 근무시간에 이토록 자주 걸려오는 전화들을 허용하고 있을까? 국민의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이 원치 않는 텔레마케팅에 낭비됨에도 왜 철저하게 기업편에 서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개인의 시간과 정보 보호를 위해서, 만일 원하지 않는 텔레마케팅 전화가 오면 수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구두로 말해두고 날짜와 업체명을 기록해둔다. 그 후에 같은 업체에서 또 전화가 올 때마다, 매회 5-6만원씩 계속 벌금을 받아낼 수 있었다.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와 시간과 에너지 낭비에 대한 보상이다. 텔레마케팅에 시달리다 못해 이에 대해 십여년 전에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어떠하냐고? 최근의 일화를 소개한다. 점심 회식 중에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휴대폰 번호가 떴는데 상대방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혹여 급한 학교 일인가해서 소리가 안들린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유선전화를 이용해 다시 전화가 왔다. 이십대 여성 목소리는 곧바로 모 은행상품의 판촉을 시작한다. “제가 지금 회식 중인데요. 전화받기 곤란합니다”라고 공손하게 말했더니, 갑자기 “재미있어? 다시 전화했는데 이제는 못받아? 이렇게 사람 약올리니까 재미있어?”하고 크게 소리친다.

텔레마케터가 이런 경우는 물론 드물다. 그래도 예전 같았으면 번호를 추적하여 그 직장 상사에게 항의했거나,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으리라. 그런데 얼마나 취직하기 힘들어서, 임시 직장에서 하루에 수십, 수백 통의 전화를 하며 많은 고객들에게 시달렸을까,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였으면 만만한 내게 이렇게 무례하게 굴까, 문득 내 제자 중 누군가도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그게 아니고요.” 하는데 일방적으로 끊어버린다. 황망해서 앉아있는 내게 회식일행 중에 모 은행 이사가 무슨 전화인지 묻는다. 혹 사실대로 말하면 이 분이 연락해서 당사자가 해고되지 않을까 하여 “별일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나 자신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생계의 문제 앞에서 ‘날아가는’ 시간의 소중함은 사치이려나.
 


이솔잎 기자  i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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