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분남 수필가
단풍이 절정이다. 가을 가뭄으로 해서 화사한 풍경은 못되지만 그런대로 나무의 가을은 화려하다. 저마다 이파리의 다양한 색깔을 한껏 뽐내며 자신의 살아온 삶을 드러낸다.
단풍은 나무의 화려한 결실의 표현이리라. 그 결실을 인간은 눈으로 즐긴다. 그 대가로 너는 단풍나무요, 너는 은행나무임을 잊지 않을 것이며 희망을 품고 새로운 만남을 기다릴 것이다. 제아무리 화려한 단풍도 한 잎 낙엽으로 자신의 몸을 추락시킨다.
여유로운 사선을 그리면서 땅에 떨어진 낙엽은 나무줄기 안에 잎줄기의 탯줄을 감추어 두었음으로 서러워하는 법이 없다. 육탈되어 가벼워진 육신을 저녁노을처럼 색 드린 후 한바탕 잔치를 벌임으로써 자연이 승자임을 인간에게 고하는 것이다. 만추의 기다림은 그래서 더욱 너그러운 것이 아닐까.
늘 기다리는 일에 인색했다. 옹색한 인생이다 보니 살아내는 일이 녹록치 않아 남과 비교해 한 발 더 앞서 가야 직성이 풀렸다. 똑같다는 것은 뒤처짐을 의미하는 것이라 여기는 듯 말이다. 시간도, 계절도, 그리고 말과 행동에서 조차 기다려 벗하는 일 없이 살아내다 보니 황량한 들판에 결핍으로 허성해진 한 그루 나무가 나인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작년 또 재작년, 해마다 단풍을 보았을 터인데 지쳐 널브러진 자신을 왜 보지 못한 것일까. 그때는 지금보다 눈이 더 밝았고 귀도 더 밝았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느낄 수도 없었다.
어느 날, 눈과 귀가 한참 어두워져 미간을 찌그려야 보고, 한 번 들은 말을 재차 물어보는 일이 잦아지고서야 나를 볼 수 있었다. 나무가 온 힘을 다해 이파리를 물들여 내려놓음으로써 나무의 영혼을 거두듯 인간도 탄생으로 부여받은 능력을 하나씩 내려놓음으로써 흩어진 영혼을 거두어 온전한 자신과 마주 바라보는 것인가 보다. 거두어들인 영혼이 삶 안에 가득 차 한없이 겸손해지면 그 안에서 새싹을 틔우는 나무처럼.
늦가을 서리가 소복이 머리 위에 내리 앉았다. 세월이 주었던 화려함을 세월은 거두어 갔으나 그 자리가 충만한 것은 새로운 희망, 곧 나를 두고 갔기 때문이 아닐까. 세월과 화해 한 일은 참 잘한 일이다.
발아래 떨어진 화려한 나뭇잎이 바람에 흩어져 흔적 없더라도 벗이 된 세월은 나를 나로 기억해 줄 것이라 위로해 본다. 익은 채 떨어진 색 고운 나뭇잎을 주어 책갈피에 넣으며 어쩌면 기다리는 것은 떠나있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함께 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기다림의 대상은 결국 ‘나‘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