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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정헌율 국민권익위 상임위원
=평생 청렴하게 사신 선친의 가르침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
=지역 사업 지키는 일이라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돌진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13년 10월 25일(금)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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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행정부지사를 지내다 1년전 국민권익위원회로 자리를 옮긴 정헌율(55) 상임위원은 지방출신으로 중앙 부처 최고의 요직인 지방재정국장을 역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전북대학교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한 정 상임위원은 고시공부를 할 당시에도 함열읍 남당리 심씨 재실과 낭산면 심곡사 등에서 했을 정도로 지역을 떠나 본 일이 거의 없었다. 중앙 부처에 재직하면서 조용한 성품과 달리 뚝심으로 지역사업을 지켜내고 스스로 생각해도 ‘목이 잘릴’ 위험을 무릅쓰면서 묵묵히 한 길을 걸어왔다. <익산신문>은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의 공직생활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1980년에 공직에 입문했으니 올해로 33년째로 알고 있습니다. 지방대 출신으로 중앙부처에서 공직생활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토종 익산 촌놈이 고시에 합격해 처음 가본 서울이란 곳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어요. 전국 각지에서 올라와 서울의 명문대학교를 졸업한 수재들과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남보다 조금 더 노력하는 수밖에는 없었죠. 처음부터 사생활은 포기했습니다. 밤 12시 이전에 퇴근한 기억이 없을 정도로 앞만 보고 달린 셈이죠. 컨디션을 항상 최고의 상태로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그 좋아하던 술도 일절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자치단체의 살림을 총괄하는 지방재정국의 주무 과장인 재정정책과장을 거쳐 꿈에 그리던 지방재정국장에 올랐습니다.

 

-고향에 대한 애착과 선친에 대한 효심이 남다르다고 들었습니다.

△바쁜 서울생활을 하면서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친지 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요. 오히려 힘들 때는 고향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선친(고 정한식)께서는 함열읍장과 낭산면장을 6년 이상 역임하시면서 청렴을 실천한 분이셨습니다. 당시 면장이란 직책은 지금과 달리 별정직이었기 때문에 조그만 흠이라도 있으면 하루아침에 바로 교체되는 임시직과 같은 자리였어요. 집에는 월급 한 푼 가져다주지 않아 ‘나쁜 가장’이었지만 청렴과 봉사로 깨끗하게 살아오신 분으로 지금도 선친의 옛날 지인들을 만나면 성실하고 자상한 분이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어쩌면 지금의 저를 있게 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앙부처에서 재임하는 동안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김영삼 정부 초기로 기억됩니다. 역사적인 지방자치 부활을 위해 내무부에 지방자치기획단이 설치되었는데, 당시 저는 사무관으로 여기에 배치되어 지방자치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정착시키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지방자치 전도사 역할을 했습니다. 그 후 미국과 프랑스에서 지방자치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뒤 다시 돌아와 10여년 만에 지방자치를 총괄하는 자리인 지방행정 정책관에 임명되었죠. 당시 저는 그동안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는데 업무를 집중해 총액인건비제도, 지방의원 의정활동비 자율결정제도 등 많은 것을 보완하는데 힘을 보탰습니다.또 자식이 분가하면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도록 기본재산을 마련해 줘야 하듯이 자치단체도 재정적으로 자립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국가에서는 가급적이면 지방에 주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었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치열한 논쟁을 벌인 끝에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번복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국세인 부가가치세의 5%를 지방소비세로 전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비록 금액으로는 2조4000억 원 밖에 되지 않았지만 국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지방재정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보통 지방재정국장이라는 요직은 특정 지역에 편중된 경향이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지방재정국장은 연간 25조원의 예산을 지방에 배정하는 요직 중에 요직이기 때문에 호남출신이 임명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전국 자치단체의 돈줄을 쥐고 있는데 인구 구성이 적은 호남출신에게까지 자리가 돌아올 수 있었겠어요? 저는 이를 돌파하는 방법은 오로지 실력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자치단체의 재정위기를 타개할 전문가가 필요했습니다. 사무관 때 지방공기업 계장을 지냈고, 과장시절엔 지방공기업과장과 재정정책과장을 거치는 등 재정전문가로서의 주요 보직경로를 다 거쳤으니 다른 사람으로 보임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시 지역 사업의 예산을 만드는 과정에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자칫하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죠.(웃음) 전국 읍지역을 대상으로 100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도시환경을 정비하는 소도읍가꾸기 사업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행안부에서 시행하는 마지막 사업이었기 때문에 자치단체 사이에 경쟁이 아주 치열했습니다. 당시 도내에는 군산시, 진안군 등과 경쟁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담당하는 업무가 아니어서 인접 담당국 직원들을 일일이 설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실무적으로는 정리가 잘 되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국회의원을 동원해 압력을 행사하니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감지하고 장관님을 직접 찾아가 건의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자기 소관도 아닌 업무를 장관에게 잘못 얘기하다가 오해를 받으면 큰 일이 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죠.

 

 

전라북도 행정부지사로 재직하던 당시 브리핑을 하고 있는 정 상임위원.

전라북도 행정부지사로 재직하던 당시 브리핑을 하고 있는 정 상임위원.

-전라북도 행정부지사로 재직하던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없습니까.

△2011년 말로 기억을 하는데 당시 LH공사의 빚이 100조가 넘자 신규 사업을 전부 취소하고 기존사업도 구조조정에 들어가 식품클러스터 사업도 취소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LH공사에서는 이 사업이 대통령 정책 사업이기 때문에 취소는 하지 못하고 정권이 바뀌길 기다리며 시간끌기에 나서고 있었습니다. 일단 토지보상을 시작하면 사업취소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과거 건설부 근무시절 동료였던 권도엽 장관, 한만희 차관, 박상우 실장 등을 차례로 만나 설득에 나섰습니다. 또 LH에 근무하고 있던 동창을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거의 한 달간 출근하다시피 LH공사에 드나들었습니다. 결국 연말 마지막날 사무실에서 마주친 이지송 사장이 ‘당신에게 손 들었다’면서 이듬해 예산반영을 약속하더군요.또 하나는 익산시가 금마농공단지를 추진하다가 문화재가 출토되자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사정이 발생했는데, 당시 정부는 농공단지 정책을 폐지키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에 장소변경을 허용하지 않아 이를 반납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어렵게 확보한 농공단지를 그대로 포기할 수 없어 국토부차관과 농림부차관을 만나 상의한 결과, 잘하면 살릴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서 도청 담당 공무원들을 중앙에 올려 보내면서 이 일이 해결되기 전에는 돌아올 생각도 말라고 엄명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장소이전 승인을 받았고 이한수시장님의 배려로 함열읍에 새로운 입지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의 현안 사업 가운데 중앙지하차도 문제가 크게 불거졌었는데요.


△호남선 KTX 공사를 하면서 확장되는 중앙지하차도 가운데 국가에서 시행하는 구간은 공사가 끝났는데 지자체 시행구간은 익산시가 돈이 없어서 공사를 못하면서 불거진 문제지요. 이로 인해 주민들이 4년 동안 불편을 겪고 있으니 이를 해결해 달라고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이 제기되었습니다. 원래 이 사업은 익산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권익위에서 다룰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4만여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관련 기관들을 모아 조정을 시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무런 잘못이 없는 국가기관을 무리해서 끌어 들이려니 당연히 반발이 많았습니다. 결국 당사자인 철도시설관리공단은 참고인으로 빠졌고 감독기관인 국토부가 당사가가 되어 합의서에 서명을 함으로써 4년 동안 끌어온 민원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익산시장출마 얘기도 들리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지역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출마권유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현직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출마여부를 떠나 퇴직 후에는 익산으로 내려가 어떠한 방식이든 고향을 위해 여생을 바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정리=고진석기자

마스터 기자  i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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