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기독교 연합회 대표회장 익산 보광교회 진춘식 목사
얼마 전 나는 <익산신문>에 기고한 기독교 집사의 글과 기사를 읽고 신문사를 내방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며 우리의 입장을 설명한 적이 있다.
익산시에 거주하는 기독교인은 33.2%를 상회한다. 약 13만 명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익산시의 각 분야에서 활동하며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분들이 다 익산에 애향시민이 아니던가.
그런데 기독교인이 참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남에게 ‘달라’는 것을 못한다. 그래서 정부나 기관을 향해 ‘이것을 해 달라’는 말을 잘 못한다.
2012년으로 기억되는데 도지사를 만나는 자리에서 ‘왜 목사님들은 다른 종교처럼 지원받을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우리 예수님의 교훈 때문이고 또 남에게 주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 익숙해 있어서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가 얼마나 많은 것을 주고 있는가는 북한에 지원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전 정부보다도 우리 교회가 지원하는 액수가 많다고 하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국제마음훈련원’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는 몇몇 보수 성향의 목사들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익산에 620처 교회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교인이 공감하고 있는 일이다. 또 전국의 교회가 공감하며 이를 주시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일련의 일들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보아야 한다.
먼저 국가예산은 공정하게 각 분야에 합리적으로 편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국민이 동의할 것이다. 우리가 언제 다른 종교에 문화유산 보전이라는 명목으로 지원되는 막대한 예산을 두고 안 된다고 나선 적이 있었던가.
우리 전북 기독교 연합회 조직에도 갈등해소 및 세계 순례길 추진위원회가 있다.
하나 되고 화합하는 것은 우리가 먼저 추구하고 바라는 일이다.
같이 만나고 동행하는 것은 먼저 마음의 소통이 전제되어야 한다. 진실할 때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목적을 미화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가 벌써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무한히 인내하고 있었다면 진정 진실을 이야기해야 익산시민이 우리 교회를 이해할 것이 아닌가.
나는 유쾌하지 않지만 분명하고 선명한 하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익산시에서 편찬하는 ‘익산시사’에 ‘○○시’라는 명칭이 삽입되어 있어 당시 엄중한 항의를 하여 삭제했던 일이 있었다. 우리가 보지 말아야 하고 듣지 말았어야 할 것들을 보고 듣고 말았다. 어찌 우리가 그 일을 잊겠는가.
이제 분명해졌다. 진실로 화합하려면 버려야 한다. 그리고 진심을 말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넓고 열려 있다. 그래서 세계를 품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진실로 화합하고 지역을 사랑하려면 버려야 한다.
진정한 애향은 13만 명의 기독교인을 포함해 익산시민 모두가 공감하고 행복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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