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보존육성지역 심의위원장 · 원광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팀장
최근 익산에 추진하고자 했던 ‘국제마음훈련원’ 건립이 무산된 이후 이 문제가 <익산신문>의 특별기고 등을 통해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 원불교 중앙교구장 김현 교무는 ‘당초의 목적을 이룰 수 있으면 좋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더라도 종교간 갈등의 문제로 번져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시민 모두가 행복한 도시를 위해 아름다운 동행을 하는 새로운 시발이 되었으면 한다’는 심경을 피력하였다.
뒤를 이어 기고한 원광대학교 평화연구소장 노재봉 교수와 숭림사 지광 주지스님도 종교적 갈등을 염려하면서 국제마음훈련원 건립이 다시 추진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백제시대 익산에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대규모의 사찰이 존재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우리가 잘 아는 미륵사지와 더불어 대관사지와 제석사지는 백제가 만들어낸 국가적 사찰이다.
이 사찰들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지만 각각 가람배치의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그 것은 각각의 사찰건립 목적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제의 궁성인 왕궁리성의 핵심적인 위치인 왕궁리 오층석탑 지하에 넓게 묻혀 있는 대관사는 대관(大官) 즉 현세 왕의 사찰이다. 그리고 동쪽에는 과거세(過去世) 국조(國祖)를 모시는 제석사가 있고, 서쪽 미륵산 아래에는 미래불을 모시는 미륵사가 위치한다. 즉 대관사를 중심으로 정통국가의 종묘와 사직적인 기능을 익산의 제석사와 미륵사가 담당했던 것이다.
이중 미륵사지는 발굴조사 결과 탑과 법당을 3곳에 모시고 회랑으로 구획한 삼원병치(三院竝置)의 가람배치가 확인되었다. 그러면 미륵은 무엇이며, 새롭게 발굴된 가람배치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미륵은 석가의 다음 대에 부처가 되기로 결정되어 있는 미래불이다. 미륵이 하생(성불)할 때는 용화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삼회(三會)의 설법을 통해 중생을 구제한다고 경전은 설하고 있다. “삼국유사” 무왕조를 보면, 미륵사는 무왕과 선화비가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아래 커다란 연못가를 지날 때 미륵삼존의 출현을 계기로 창건된다. 곧 익산은 미륵이 하생한 곳으로 가난과 질병과 전란 등 인간세의 모든 고통이 없는 구원의 땅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갖는 미륵사지 가람배치는 용화보리수를 상징하는 용화산 아래에 미륵이 하생하는 장면을 가람으로 구상화 했다고 하는 점에서 백제인의 천재적 창조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면 무왕을 중심으로 한 백제왕실은 대관사와 제석사, 미륵사를 건설하면서 익산 땅에 담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우리가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알고 있는 미륵사 창건의 내력을 기록한 “삼국유사” 무왕조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거기에서는 마를 캐어 홀어미를 봉양하는 서동의 효성스러운 모습, 평민의 몸으로 적국 신라공주와의 사랑과 결혼과 왕위의 등극, 적국 신라 진평왕이 미륵사 창건을 위해 백공(百工)을 보내 조력했다는 내용은 효와 사랑과 평등과 화합을 바탕으로 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곧 백제 왕실은 익산의 건설을 통해 원융(圓融)과 통섭(統攝)의 정신을 담아 평화와 번영의 영속이라는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서탑 해체과정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의 명문에 왕과 왕비의 수명과 복리를 기원할 뿐만 아니라 아래로는 창생(蒼生)을 교화하고 중생들이 불도(佛道)를 이루게 해달라는 염원을 담은 기록 속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요즈음 익산은 고도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고도로 지정되어 고도보존과 육성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다른 고도와의 차별화를 위해 백제 왕도의 골격 회복과 더불어 백제가 익산의 건설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정신적 가치까지도 복원되는 종교문화도시로 가꾸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여 왔다.
즉 지역 간의 화합, 계층 간의 결속, 종교 간의 조화, 국가 간의 갈등해소를 통한 화합과 평화의 가치를 추구하는 미래지향적이고 창조적인 도시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진정 차별화되고 품격 있는 역사문화도시로 익산을 가꾸어가는 정책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익산을 종교문화도시로 가꾸어 나간다는 것은 고도 육성을 불교정책화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종교의 계파를 뛰어 넘어 우리 문화 자산에 미래지향적으로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자는 것이다. 곧 익산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인류의 가장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통해 미래 인류사회의 화합과 평화에 기여하는 철학이 살아 숨 쉬는 도시로 재창조하자는 문화운동이다. 그리고 그 성패는 특히 종교인들의 몫이 아닐까.
또 다시 천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지만, 국제마음훈련원이 건립되어 1400여년 전 백제의 꿈이 전 인류의 꿈이 되어 실현되는 기초가 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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