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익산교육지원청 교육장 문채룡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볼을 스칩니다. 유난히 덥고 습하던 여름이 가고 어느덧 가을입니다. 계절이 바뀌는 자연의 이치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더딘 듯, 변화되지 않을 듯하면서도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해 갑니다.
학교는 ‘배움과 성장의 행복한 공동체’여야 합니다. 학교는 더 이상 아이들을 ‘훈육’하고 ‘성적’에 따라 한줄 세우기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배움의 기쁨을 맛보고, 하루하루 성장해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행복을 주는 곳. 바로 그런 학교가 우리 익산에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교실은 학교에서 교육이 실현되는 주된 공간입니다. 학교가 행복한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각 교실에서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린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행복한 교실은 선생님들에게는 보람과 자긍심을 갖게 하고 아이들에게는 만족과 자신감을 심어줍니다.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학교에 대한 신뢰감과 희망을 줍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세종대왕에게 본받을 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당시에는 한자 문화권인 우리나라는 중국을 섬기고 한자를 숭상하는 문화가 팽배해 있었습니다. 백성들 중에 글을 읽고 깨쳐 자신의 생각을 한자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양반과 지배계층 일부였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세종은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거나 효율적으로 백성을 통제하기 위한 방편이 아닌,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실어 펴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했습니다. 이 일은 과학적 글자 창제의 의미 이상으로 문화 혁신의 의미가 있습니다.
세종의 세계관은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약하고 힘없는 사람편에서 세계를 볼 줄 아는 인본주의적인 세계관이었습니다.
서근원 교수의 ‘학교혁신의 패러독스’라는 책에서는 이러한 세종의 사상은 한마디로 ‘교민(敎民)’의 패러다임이 아닌 ‘회인(誨人)’의 패러다임이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교민(敎民)은 배우는 사람의 배움에 대한 열망이나 필요보다는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주입하려는 의지가 드러나는 말입니다.
반면, 회인(誨人)은 젖을 먹이고 사랑으로 아이를 기르듯이 배우는 사람을 기다려 주고 가장 필요한 때에 꼭 필요한 것을 주면서 ‘스스로’ 깨달아 가도록 돕는 것을 말합니다.
행복추구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 권리에 해당합니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은 모두의 희망일 것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교실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교민’의 패러다임으로 볼 것인가, ‘회인’의 패러다임으로 볼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익산교육지원청은 모든 학교의 교실이 행복한 교실이 되도록 응원하고 도우려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대한 의지와 열망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들이 마음 속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아이들의 성장을 기다려주고 응원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도록 선생님들의 연구와 연수활동을 활성화하려 합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대한 의지는 학생들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 더욱 충만해집니다. 과거에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데 즐거움이 있다고 했으나, 오늘날은 학생 개개인의 타고난 영재성이 있음을 믿고 이를 찾아 신장시켜줌으로써 꿈을 가꿔가도록 지도하는데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학교에 가고 싶은 경우는 얼마나 될까요? 또한 자신들의 학창시절 대부분의 생활공간인 교실을 행복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요? 굳이 조사 분석의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쉽게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학교보다 더 가고 싶은 곳, 교실보다 더 행복한 곳들이 학생들을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성장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감수성이 예민하여 주변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고 자아실현에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학생들 주위에는 미디어환경이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또한 쉽고 빠르게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기계적 환경이 만연해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이 학생들의 정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그들의 언어사용에서 단적으로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컴퓨터 게임 환경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공격적이고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신조어가 많습니다. 이러한 환경에 자주 노출된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보다 무감각한 기계적 언어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무미건조한 기계적 언어환경에서 훈훈한 인성이 형성될 수 있을까요? 기계적 환경에 익숙한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혹 쉬운 방법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 것에 만족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기계적 환경에 노출되더라도 학생들이 바람직한 바람을 가질 수 있도록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학생들의 바람과 선생님의 기대는 얼마나 일치할까요?
일치하는 수치가 높을수록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가 만족하고 그 교실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만족과 자신감을 주고 선생님에게 긍지와 보람을 주는 행복한 교실을 위해 누구에게나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습니다. 선생님이 행복한 교실을 위해서는 학교교육을 신뢰하고 연대의식으로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역할을 분담하여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학교교육을 지원할 수 있으며, 학생이 행복한 교실을 위해서는 학생들이 바람직한 바람을 가질 수 있도록 주위환경을 정비하고 관심을 증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우리 익산의 희망이며 우리나라의 밝은 내일을 약속하는 학교교육의 신뢰회복은 그 기본단위인 교실이 행복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에 자신의 할 일을 찾아 노력하는데서 가능하리라 기대해 봅니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우리들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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