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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원광대학교 가정아동복지학과 교수
여러 해 전에 소설가 김형경은 한 칼럼에서 '엄친아'와 '나쁜 친구'를 비교했다.
'엄친아'는 우리 모두가 잘 알듯이 외모, 재능, 실력에서 뛰어난 엄마 친구 아들로, 엄마들이 자신의 아들과 비교하는 존재이다.
'나쁜 친구'는 자식이 어떤 나쁜 일을 저질렀을 때 '우리 아들은 원래 그런 애가 아니라고, 나쁜 친구 꼬임에 빠져 그런 것이라며 아이를 감싸는' 엄마가 쓰는 말이다.
김형경은 정신분석학자인 윌프레드 비온의 '담아주기'와 도널드 위니콧의 '안아주기'개념에서 볼 때 엄친아 엄마보다는 나쁜 친구 엄마가 자식의 성장에는 더 유용하다고 결론지었다.
'나쁜 친구 엄마의 아들'은 엄마의 절대적 지지와 신뢰 속에서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될 것이고, 엄마의 믿음과 소망에 부합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할 것이다.
'엄친아의 아들'은 지속적으로 비교 평가당하는 일에 화가 나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결과에 좌절하고, 결국 엄마의 사람을 받지 못할까 불안해하는 아들이 될 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언제 엄마가 널 사랑한다고 느끼느지 물었다. 대답은 '엄마가 날 쳐다볼 때!‘ 이 말은 언제나 가슴 속에서 내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아이를 쳐다보는 그 모습에서 아이는 여전히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느끼는지.
여든 다섯의 우리 어머니는 "얘, 나는 지금 엄마하라면 못하겠다. 뭐 그렇게 엄마가 할 일이 많니? 너희는 참 대단하다. 난 그저 밥이나 해줬지".
엄마 노릇을 한 지 16년이 됐는데 난 점점 더 우리 엄마같이 밥만 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어느 학원이 더 좋은 지를 알아내는 것보다 아이의 김밥을 마는 엄마가, 아이의 유머와 줄임말로 소통하지 못해도 그냥 아이가 말하는 모습에 미소를 짓는 엄마가 말이다.
아이가 우리 엄마는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받아들여준다고 믿고, 목표를 세우고 기대하는 엄마가 아니라 자신이 도달한 그 곳에서 자신을 안아주려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어 주었으면 한다.
우리가 지금 엄마라는 단어에 갖는 포근함과 가슴 저림을 아이도 가졌으면 한다.
난 소위 많이 배운 엄마지만 내 지식에서 오는 판단력보다는 '그냥 아이를 사랑하는 것, 아이를 받아들이는 것', 그 옛날부터 모든 엄마들이 해 오신 바로 그것, 지금을 사는 엄마들이 잊고 있는 바로 그 엄마의 모습으로 ‘난 엄마다’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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