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호원대 한국어교육원 한국어강사
드라마는 참으로 허망하다.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던 드라마도 종영과 함께 기억에서 사라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청자의 심금을 울리던 명대사는 종종 기억에 오래 살아남아 도대체 어느 드라마에서, 누가 한 대사였는지를 생각해내느라 애를 먹게 하곤 한다. 한때 여심을 흔들어 놓았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박신양과 김정은, 이동건의 빛나는 연기로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던 이 드라마는 숱한 명대사를 남기기도 하였다. 저 대사를 듣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한 여성들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여심을 설레게 했던 명대사는 이동건이 김정은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올리고 고백했던 ‘내 안에 너 있다. 니 마음 속에는 누가 있는지 몰라도.’가 아닐까 싶다. 이동건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그 대사가 더 애틋하게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박신양의 주옥같은 명대사를 뒤로하고 오늘은 이동건의 안타까운 대사 ‘내 안에 너 있다. 니 마음 속에는 누가 있는지 몰라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속’과 ‘안’은 같을까?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
‘안’은 어떤 곳이나 물건의 둘레에서 가운데로 향한 쪽, 또는 그 부분을 나타내고 ‘속’은 깊숙한 곳, 안, 내부. 물체의 거죽을 제외한 부분. 사물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 내용. 사람의 몸에서 배의 안 또는 위장. 마음가짐, 심성. 철이 든 생각 등을 나타낸다.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안’과 ‘속’의 차이를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괄호 속에 알맞은 말은 넣으시오.’와 ‘차가 터널 속에 갇혔다.’의 경우를 비교해 보자. ‘괄호 속’은 ‘괄호 안’으로, ‘터널 속’은 ‘터널 안’으로 고쳐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도서출판 유토피아에서 펴낸 ‘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에 의하면 ’안‘은 2차원의 안쪽, 혹은 1차원 선의 가까운 쪽을 가리키고 ‘속‘은 3차원 공간의 내부를 가리킨다고 결론짓고 있다.
1차원 경우 ‘괄호 안’, ‘터널 안‘, ’100미터 안‘, ’사흘 안‘, ’10년 안‘과 같이 쓰이고 2차원의 경우 ’네모 안‘, ’테두리 안‘ 울타리 안’, ‘창틀 안’ 등과 같이 쓰인다. ‘사과 속’, ‘바다 속’, ‘뱃속’, ‘머릿속’, ‘땅속’, ‘물속’ 등과 같은 3차원 사물에는 ‘속’이 더 잘 어울린다.
‘안’과 ‘속’의 상대어는 각각 ‘밖’과 ‘겉’이다 ‘겉’과 ‘속’은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일부로 모든 사물은 ‘겉’과 ‘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안’은 사물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밖’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밖’은 ‘안’을 구분지어주는 경계를 벗어난 모든 공간을 가리킨다. 따라서 ‘안’이 아닌 곳은 모두 밖이다.
‘안’과 ‘속’ 중에서 내부가 비었을 때 비정상이면 ‘속’을, 비어도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안’을 쓸 수 있다. ‘속빈 강정’, ‘배추 속’, ‘머릿속’처럼 어떤 사물에 ‘속’이 붙으려면 내부가 꽉 차 있어야 정상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집 안’, ‘버스 안’, ‘괄호 안’ 등은 원래부터 비어 있는 공간이다. 결국 ‘안’에는 뭔가가 들어 있을 수도 있고 비어 있을 수도 있으며, 설사 비어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가슴’은 속이 꽉 찬 3차원 사물로 볼 수 있으니 ‘가슴 속’이 자연스럽고 모양도 크기도 없는 ‘’마음‘은 ’안‘ 보다는 ’속‘과 어울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마음을 비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고 ’마음‘은 기쁨, 슬픔, 희망, 절망, 포부, 원망, 꿈, 등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한편 냉장고, 호주머니, 가방, 서랍, 그릇, 상자, 장롱 등은 원래 물건을 넣어두기 위한 목적으로 생겨난 사물이므로 ’속‘이나 ’안‘을 쓰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제 이동건의 ‘내 안에 너 있다. 니 마음 속에는 누가 있는지 몰라도.’가 자연스러운 표현인지 아닌지는 각자 생각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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