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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중앙총부를 곁으로 끼고 돌아 가다보면 호젓한 오솔길이 맑은 향기를 내뿜으며 이어진다.
어느덧 차량의 소음은 칠월의 녹음에 묻히고 명랑한 산새소리가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고요한 길을 따라 땀이 흐를 정도 걷다보면 단아한 현대식 건물이 옹기종기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 노인복지 시설 가운데 으뜸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원광효도마을이다. 사회복지 법인 원광 효도마을은 올해로 출범 열 돌을 맞았다.
법인 출범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온 정열을 불살라 마을을 이끌어 온 이는 오순옥(희선) 이사장이다. 말 그대로 이 곳의 산 증인인 셈이다. 오 이사장을 만나 어렵게 건너온 시간과 앞으로의 바람을 들어 보았다.
“저에게는 제 몸이 병들고 아픈 그 자체가 축복이에요” 칠순을 바라보는 오순옥 이사장은 요즘의 건강을 묻는 질문에 가식이나 허위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남들은 한 번의 수술만으로도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다는 암 치료와 척추 수술 등 자그마치 10여 차례의 힘든 수술을 받으면서 그가 터득한 진리는 ‘그 자체가 축복’이라는 것이다.
도통 일반 사람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답변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말을 이었다. “건강한 몸으로 어르신들을 보살필 때에는 몰랐어요. 그저 나이가 들다보니 육신이 힘들어서 그렇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큰 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워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상황이 되고 보니 어르신들의 마음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 이사장은 장기에 암세포가 커지면서 수술을 받은 뒤 병상에서 기저귀를 차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됐었다고 한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어르신들이 겪어야 했던 곤란한 상황과 처지를 퍼뜩 깨닫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어르신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그 고통을 내가 온전히 체득한 다음부터는 어르신들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었답니다.” 이제야 오 이사장의 대답이 이해가 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극한의 고통조차도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고 이를 통해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지혜와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오 이사장은 우리나라 복지 분야에서는 원로로 꼽힌다.
이미 20대 초반부터 청소년을 위한 야학을 개설해 배움의 길을 열어줬으며 어린이집 설립에도 나서 아동과 청소년들의 복지에 관심을 가져왔다. 1995년에는 사회복지사 1급 자격을 취득해 본격적인 노인복지사업에 나서게 된다. 지금처럼 노인복지에 대한 수요가 미약한 시절부터 어르신들의 편안한 노후에 관심을 보였던 오 이사장은 차분하게 미래에 닥쳐올 ‘초고령사회’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본인이 고사해 적극 나서지는 않지만 익산시는 물론 전라북도, 대한민국의 노인복지 관련 단체에서 오 이사장을 ‘모시기’에 열성을 보였다. 그만큼 우리나라 노인복지 분야에서 오 이사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남달랐다는 의미다. 그런 그에게 원광효도마을을 일구는 대 역사가 주어진 것은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른다. 오 이사장이 있었기에 지금의 원광효도마을이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미 정해진 계획에 따라 일을 수행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예측하고 구상과 기획을 해 나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의 복지정책이 변화되기 이전에 미리 준비해 허둥대지 않도록 했던 것은 오 이사장이 가진 복지에 대한 식견과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적극적인 노인복지의 수요에 대비해 지난 2003년 삼동회로부터 독립해 원광효도마을을 법인화한 것이나 2008년에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앞두고 관련 시설을 구축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할 교육원을 개원하는 등의 노력은 이제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물론 그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초창기 협소한 시설에서 불편을 감내해야 했던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리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이 흘러드는 건물이 대부분이었고 한옥 집에는 비닐을 덮어 놓았지만 태풍이나 눈이 내리는 날이 되면 행여 어르신들이 사고라도 입을까봐 조마조마한 날들이 이어졌다. 지원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항상 부족한 주식과 부식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짓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어르신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와 돕던 기억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설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정부나 자치단체의 보조를 받았지만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돈을 마련하지 못하자 공사현장의 인부들이 이용하는 ‘함바식당’을 직접 운영하고 수의를 제작해 팔거나 전통식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과 땀방울이 오늘의 원광효도마을로 꽃피우는데 밑거름이 됐음은 불문가지다. 이제는 국내 최우수 복지시설로 각종 평가에서 최우수를 도맡다 시피하고 있으니 더 이상 바람도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꼭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남아 있단다. “효도마을이 양로시설, 요양시설, 전문요양시설 등을 완비하고 있고 병원까지 들어와 있어 시설면에서 인프라는 모두 구축됐다고 봅니다. 남은 것은 전문적인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오 이사장이 말하는 교육이란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과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효행 교육이다. 이를 위해 요즘 오 이사장은 효문화원 건립에 온 신경을 쓰고 있다.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1인가구의 수가 점차 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전통윤리인 효 사상과 문화의 확산을 위해 필요한 시설이 효 문화원이기 때문이다. “청소년과 일반인들의 효 의식을 정립하고 도덕적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기 위한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의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를 토대로 효행실천을 생활화해 나가는데 효문화원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 이사장은 효 문화원의 건립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지만 아직 목표에 이르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관심 있는 이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오 이사장은 “원광효도마을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어르신들과 직원,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의 결과”라며 “이 같은 노력이 가까운 시일 내에 큰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면서 밝게 웃어보였다. /권 찬기자
오순옥(희선) 이사장 약력
오순옥(희선) 이사장.
△1968년 김해여자고등학교 졸업 △1972년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졸업, 원불교 삼동원 청소년 야학 개설 △1974년 원불교 삼동원 총무 △1983년 원불교 법무실 교무 △1985년 원불교 금마교당 교무 △1992년 원광상록원 생활지도사 근무, 마동 어린이집 설립 △1993년 부송종합사회복지관 설립 및 관장 취임 △1995년 사회복지사 1급 취득 △1996년 삼동재가노인복지관 설립 △1997년 사회복지법인 삼동회 상임이사 역임 △1998년 왕궁원광어린이집 설립 △1999년 사회복지법인 원광효도마을 수양의집 원장(현) △2000년 한국노인복지중앙회 이사 △2003년 사은의집 설립, 사회복지법인 원광효도마을 이사장 취임(현) △2004년 원광효도마을 시니어클럽 개관 △2005년 원광효도노인전문병원 설립, 원광효도식품 설립, 정화수도원 설립 △2006년 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 수석 부회장(현), 정화수도원 원장 역임 △2007년 실버의집 설립, 한국종교계 사회복지협의회 원불교 대표 역임, 원광실버의집 원장 역임 △2008년 전라북도사회복지협의회 부회장 역임 △2009년 사은의집 원장 역임 △2011년 원광실버의집 원장(현) △2013년 한국노인복지중앙회 부회장 역임 △1997년 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2009년 제10회 사회복지의날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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