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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도예전공 이광진 교수(63). 이 교수에겐 항상 앞에 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지방 출신 최초’다. 공예를 전공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수도권에 워낙 몰려 있다 보니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않고선 따기 힘든 자랑스러운 ‘수식어’다.
지역 작가 출신 처음으로 목양공예상(2008년)을 수상하고, 지방 최초로 전국 규모의 공예대전을 창립한 이 교수가 이번에도 큰일을 냈다. 지방 출신 최초로 한국공예가협회 이사장에 당선 된 것. 1973년 협회 창설 이래 무려 40년 만에 이룬 쾌거다. 수많은 지역 출신 공예가들이 도전했지만 아무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교수는 “그동안 물망에 오르긴 했지만 도전은 처음이다. 여러 회원들의 출마 권유를 받고 등 떠밀려 나갔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 물꼬를 터 다음에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 생각해 출마를 결심했다”며 “아마 14회째 익산한국공예대전을 성공리에 이끈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고 익산 회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교수는 지난 13년 간 익산한국공예대전을 지켰다. 1999년 (사)한국공예문화협회 창립을 주도한 이 교수는 뜻 있는 공예인들을 모아 출연금 1억600만 원을 만든 뒤 이듬해 '익산한국공예대전'을 발족시켰다.
당시 대상 수상금은 1천만 원. 상금 액수만으로도 화제였다. 한때 후원이 끊겨 위기를 맞았을 때도 망설임 없이 사재를 털었다. 현재 대상 수상금은 3천만 원. 총 상금만 1억1천만 원에 달한다.
이젠 익산한국공예대전은 명실 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예대전이 됐다. 이 교수가 지역 최초로 한국공예가협회 이사장으로 선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공예대전 발족 당시 105일 만에 무려 1억600만 원의 기금을 모금한 이 교수. 공예에 대한 열정과 집념으로 똘똘 뭉친 이 교수를 19일 이른 아침 원광대학교 교수실에서 만났다.
-한국공예가협회는 어떤 단체인가.
한국공예가협회가 올해로 40주년을 맞는다. 회원 1천300명 대부분이 석사학위 이상을 소지하고 있는 전국의 대학교수·작가들로 구성됐다.
우리나라 가장 대표적인 공예인 모임이고, 최고 권위의 단체다. 해마다 정기전을 열고 있다. 한국공예가협회상과 올해의 젊은 작가상, 목양공예상을 제정해 수상하고 있다.
활발히 활동하고 귀감이 되는 회원에겐 연말에 ‘상’을 주기도 한다. 한국 공예를 세계에 알리고 대표하는 단체다. 물론 공예인 친목과 권익을 대변하는 게 첫째다.
금속공예·도자·목칠·섬유·유리 등 5개 분과별로 움직인다. 사무국은 분과별 해외전을 준비해주고, 교류전을 지원해 준다.
-7월 18일 한국공예가협회 이사장에 취임한다. 3년 임기 동안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회원들에게 취임식을 갖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올해 연말 '한국공예가협회 회원의 밤'을 통해 많은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한 해를 결산하는 이 자리에서는 공예인들에 대한 수상과 함께 회원 간 친목과 화합도 다지고 싶다.
공예만을 전시하는 ‘공예아트페어’를 신설할 계획이다. 미술협회가 주관·주최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 공예부문을 한국공예가협회가 주관해 개최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한 해를 결산하는 연말에 회원의 밤 행사를 열어 협회 재정확충에 힘쓸 계획이다. 운영이사제도를 활용해 기금을 모금, 공예인 저변확대 도모와 재정확충에 이바지하고 싶다. 회원 자구 노력을 추진하는 셈이다.
그간 한국공예가협회의 운영이 작품 생산·전시 등의 활동에 집중된 게 사실이다. 학술적인 부분에 관한 활동이 필요했던 회원들의 이탈을 불러온 이유다. 따라서 이젠 이론에도 심혈을 기울일 방침이다.
아무튼 외연보단 내실을 충실히 다지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지역 출신 최초로 당선된 만큼 부담도 크지만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협회 재정을 확대하고 목양공예상도 예전의 위상을 되찾고 싶다.
-익산에 본부를 둔 (사)한국공예문화협회에 대해 소개한다면.
1999년 전국 공예인들이 105일 동안 1억600만 원의 기금을 모아 창립했다. 물론 대한민국 최고의 공모전(익산한국공예대전)을 만들기 위해 공예인들이 뜻을 모은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IMF 때인데도 동료·제자·후배들이 동참해줬다. 지금 이게 종자돈이 돼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익산한국공예대전도 13회째 열었다. 익산시와 전북도 문예 진흥기금을 지원 받지만 끊임없는 자구노력이 원동력이다. 운영위원회를 조직해 1년에 100만 원씩 후원을 받고 있다. 연말 이들을 초청해 식사 대접을 하고 여흥도 즐긴다. 돌아갈 땐 작품을 선물한다.
-‘이광진 교수’하면 익산한국공예대전을 빼놓을 수 없다. 어느덧 14회째를 맞는다. 대한민국미술대전을 능가하는 공모전으로 자리매김했는데….
대한민국미술대전 공예부문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고, 질도 높다. 국전을 대체할 만한 최고 권위의 공모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이 120점 출품되지만 익산한국공예대전은 평균 450점이나 출품된다. 이 가운데 24%만 입상한다. 그만큼 어렵고 수준 높은 공모전이다. 물론 지방 최초, 유일하다. 총 상금만 1억1천만 원이다. 기금은 2억5천만 원 정도 적립됐다. 교동아트센터, 리치푸드 등 후원자와 회원들이 도와준 덕분이다. 모든 공을 처음부터 함께한 (사)한국공예문화협회 회원들에게 돌리고 싶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최종 꿈은 익산에 공예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이미 대형 작품이 익산시에 50여 점 보관돼 있다. 사리장엄 발굴 등 마한·백제 문화도시에 딱 맞는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공예문화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특히 익산이 우리나라 공예의 메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지난 1989년부터 원광대 교수로 재직 중인 이 교수는 지난 2000년부터 (사)한국공예문화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익산예총회장, 전북산업디자인협회장, 전북공예가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역 공예가로는 처음으로 목양공예상을 탄 데 이어 전북예술상, 목정문화상, 한국공예가협회상, 미술작가대상 등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입지도 탄탄하게 다져왔다.
/우창수 기자
이광진 교수가 걸어온 길
- 원광대학교 졸업
- 단국대학교 대학원 졸업
-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도예전공 교수
- 개인전 8회
- 단체전 500여회
- 1999년 전북예술상
- 2004년 목정문화상 미술부문
- 2007년 한국미술작가 대상
- 2007년 한국공예가협회장
- 2008년 목양공예상
- 2009년 익산예술문화대상
- 2011년 익산시민의 장 문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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