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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을 거치면 신화가 된다.'
‘배구 명가’ 남성중학교(교장 고우영) 사령탑을 맡고 있는 강수영 감독(43․체육교사). 지난 5월 대구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에서 전북에 금메달을 안긴 ‘명장’이다.
올해만 벌써 4번이나 전국대회 정상에 오르며 ‘역시 강수영’이란 감탄사를 연발하도록 만들었다.
더욱이 올 4관왕을 차지하는 동안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무실세트 우승’이란 신화를 창조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은사 부름 받고 모교서 후배 양성
대한민국 배구계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그가 모교 코치로 취임한 것은 1995년. 남성중․고 시절 은사였던 윤길창(정년퇴직)․김은철(남성고 감독) 교사의 부름을 받으면서부터다.
당시 명지대학교 주전 세터로 슈퍼리그에 출전했으나 불의의 발목 부상을 당해 선수생활을 접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였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모교에서 봉사할 생각이 없느냐”고 은사의 권유를 선뜻 받아들인 게 벌써 18년이 흘렀다.
존경하는 은사 밑에서 착실히 지도자 수업을 받은 그는 낮엔 체육관에서 후배들과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밤엔 우석대학교 교육대학원을 다니며 교사 임용 준비에 매진했다. 이때부터 사실상 지도자의 꿈을 키운 셈이다.
그러다 2000년 정식 체육교사로 임용되면서 감독 자리에 앉았다. 사령탑을 맡은 후 수많은 유망주들을 배출했다. 김현수(드림식스), 김강녕(삼성화재), 안요한(캠코), 김다빈(드림식스), 김민제(LG) 등 프로선수를 비롯해 유니버시아드 대표 송희채(경기대), 오재성(성균관대) 등 차세대 국가대표 선수들을 길러냈다.
이들과 함께한 13년 동안 우승만 18회, 준우승 8회, 3위 7회를 차지하며 ‘우승 제조기’란 명성을 얻었다. 물론 다른 학교 감독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음은 말 할 것도 없다.
#노력은 기본, 겸손한 마음자세가 중요
다른 지도자들이 평생 동안 문턱조차 못가 본 ‘우승’을 밥 먹듯 해온 그의 지도 철학은 ‘겸손한 마음자세.’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기본이고, 겸손한 마음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 다음은 기술적 부분인 ‘기본기’를 강조한다. 기본기가 탄탄해야 팽팽한 버티기 싸움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강팀이 된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화려한 공격보다 기본기 위주의 팀 색깔이 지금의 ‘남성중 배구’라고 말한다.
“프로 명문 팀인 삼성화재가 금방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이길 수 있는 것은 기본기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기본기에 소홀한 팀은 막상막하 경기에서 범실을 범하며 자멸하기 마련이다. 삼성화재는 어찌 보면 현란한 기술보다 기본기의 승리”라고 말했다.
#‘삼위일체로 이룩한 ’전국대회 4관왕‘
남성중․고 시절 컴퓨터 세터로 명성을 날리며 코트를 평정했던 그는 지도자로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올해 열린 영광배를 시작으로 춘계전국중고대회, 태백산배, 전국소년체전에서 우승하며 4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무실세트 우승이란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더구나 1학기 동안 4개 대회 우승은 창단 이래 최초다.
내친김에 남은 2개 대회도 우승을 노려볼만 하지만 1,2학년에게 경기 경험을 쌓아줄 요량으로 마음을 비운 상태다. 하지만 승부사인 그는 막상 경기에 임하면 어떻게 돌변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처럼 승리가도를 달릴 수 있는 비결은 ‘학교․선수․학부모’가 삼위일체를 이뤄 부단히 노력한 결과물 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손태희 이사장에게 가장 먼저 고마움을 표시했다. 지도 능력이 뛰어난 다른 선배들도 많은데 교사로 채용해 지도자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준데다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 한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손 이사장을 비롯해 배구부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고우영 교장, 백문호 교감, 정동혁 행정실장, 그리고 학부모 등의 성원이 있었기에 남성중 배구가 있다”며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배구만큼은 존재감 있게 키우겠다고 임한 게 오늘의 영광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익산시배구협회 소삼 회장과 이쌍동 세계로건설 대표, 김강용 다고네푸드 대표 등 배구인들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모든 공(功)을 전정훈 코치에 돌리고 싶다”
남성중 신화 창조 주역은 단연 선수들이다. 주장이자 주공격수인 김종찬(182cm․레프트), 스카이서브와 백어택이 일품인 이주호(187cm․라이트), 제2의 신진식이라 불리는 여민수(182․레프트), 중학교 세터 랭킹 1위 정승현(167cm), 환상적인 플레이로 침체된 팀에 활력소를 불어넣는 조상빈(184cm․이상 3년) 등 어느 한 선수도 모자람이 없다.
여기에 내년 주축멤버인 김선호(183cm)․강우석(183cm․이상 센터) 등 2학년생들의 역할도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옥’으로 다듬은 전정훈 코치를 빼놓을 수 없다.
강 감독은 “솔직히 모든 공을 제자인 전정훈 코치에게 돌리고 싶다. 선수들과 함께 땀 흘리며 열심히 훈련해준 덕분에 우승 퍼레이드를 이어가고 있다”며 “시합 때도 친형처럼 항상 선수들 옆에서 컨디션 조절에 힘써 준 것을 고맙게 생각 한다”고 말했다.
#솥단지 ‘라면’ 먹고 싶어 배구공 잡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출생인 그는 마령초 4학년 때 처음 배구공을 잡았다. 당시 165cm로 키가 커 담임교사의 권유도 있었지만 운동 끝나고 먹는 ‘솥단지 라면’에 끌려 운동을 시작했다.
마령초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읍내에 있는 진안 중앙초로 스카우트 돼 정식 엘리트 코스에 들어섰다. 백산중에 진학한 그는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남성중으로 전학을 왔다. 중학 시절 동기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병택․김성채(LIG과장)다. 청소년 대표와 국가대표를 지낸 이종만․이호(전 현대캐피탈)가 바로 밑 후배다.
고교 시절 176cm로 단신 세터였던 그는 이들과 함께 전국 코트를 호령했다. 춘계연맹전, 대통령배, 전국체전 등 3개 대회를 휩쓸며 전관왕 금자탑을 쌓았다.
하지만 항상 ‘단신 세터’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우승팀 세터지만 청소년대표나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운동을 그만두려고 짐도 수없이 쌌다. 그때마다 운동을 시작할 때 아버지와 약속한 “한 길을 걸어라”라는 말이 생각나 마음을 다잡곤 했다.
명지대 체육학과에 진학한 그는 2학년 때 주전 자리를 꿰찼다. 속공 토스만큼은 따라올 자가 없었다. 당시 신흥 배구 강호 명지대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다. 그러다 슈퍼리그에서 발목을 크게 다쳐 정든 코트를 떠나야만 했다.
#배구선수 출신 부인 ‘배구가족’
그는 한국중고배구연맹 사무국에 근무하던 황진아 씨(40)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경기장에서 자주 마주치며 ‘착하고 성실함’에 반해 결혼에 골인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배구인에 대한 풍부한 이해심과 배려심이 더 호감이 갔다. 그의 부인도 고교 1학년 때까지 배구선수로 활약했기 때문.
“전지훈련과 시합이 많다보니 집을 자주 비운다. 하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적극 내조해줘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신광(부송초 5년)·창호(부송초 2년) 두 아들을 둔 강 감독은 막내 창호가 배구에 흥미를 보여 선수로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다.
/우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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