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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원광대 가정아동복지학과 교수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들은 도를 닦는다고 합니다. 아이가 속 터지게 하고, 조금 크면 잘났다고 말 안 듣고, 이상한 옷 입고, 종일 핸드폰 끼고 살고… 등등 그런 과정에서 도를 닦는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엄마들이 도를 닦는다는 것은 ‘기다림’을 알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1살 정도가 되면 걷는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아직도 기어 다니고, 옆집아이는 말을 하는데도 우리 애는 아직도 겨우 엄마, 아빠 하는 수준이니 답답합니다. 그래도 2살이 되면 옆집아이나 내 아이나 뛰어다니며 노는 것은 같습니다.
운동을 하고도 샤워를 안 하던 애도 중학생이 되니 샤워를 하고, 머리모양에 신경을 씁니다. 그러고 나면 그 전에 조바심하며 왜 우리 애는 이럴까? 뭐가 잘못됐나? 했던 것이 쑥스러워 집니다. 스스로에게, 또 아이에게 뭐라 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우아한 엄마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도 우리는 그 저절로 오는 시간을 못 참아서 아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밀어붙이고, 참견하고, 개념이 있네, 없네 하고 걱정합니다.
우리는 아이에게 “다 널 사랑하니까 그런 거야.“ 사랑하니까, 애정이 있으니까 라고 조건을 달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합리화되고 용서될 수 있다는 주장이 되니까요. 이 말에는 아이도 거부하기 힘듭니다. “다 너를 위해서야.” “애들이 뭘 알아요? 그러니 어른이 결정을 해줘야지요.” 우리는 아이를 위해서라며 대신 결정을 해주면서 아이가 성장할 기회를 빼앗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내 아이와 다르고, 아이 인생을 살아줄 수도 없고, 아이는 홀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은데 우리가 아이 스스로 성장하고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도록 조금만 더 기다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정말 ‘너’라는 아이를 위해서일까? “너라는 아이‘가 내 아이라는 그 자부심을 위해서는 아닐까?
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 비철거리며 뒤뚱거릴 때, 엄마는 더 잘 걷도록 응원하고, 넘어질까 팔을 뻗어 손을 벌렸어도 계속 손을 잡아주지도 않고, 대신 걸어주지는 않았는데. 아이가 걸을 때까지 옆에서 조심조심 아이를 응원하던 그 참을성을 어디에 가버렸을까요? 그때는 잘 했는데...
가을에 국화분재를 선물 받았습니다. 국화꽃이 지고 겨우내 집안에 두고 물을 주었더니 새 싹이 나와 무성해졌습니다. 스스로 뿌듯해하면서 쑥쑥 자라날 국화 싹을 기대하며 새 봄 따뜻한 날에 마당에 심었습니다. 새싹들은 자리를 잡는 듯하더니 비실대다 녹아버렸습니다. 아마도 다 죽어버린 듯 합니다. 기다려도 소식이 없네요.
내 아이가 앞으로 자신이 주인이 되는 세상에서 당당히 자신의 의지로 서서 곁에 있는 사람들과 멀리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이는 자신의 힘을 키울 시간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조금 더 기다리면 아이의 힘이 조금씩 자라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나 자신과 아이가 자랑스러우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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