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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익산지회장
무더운 여름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노래만 부르면서 세월을 보낸 베짱이가 눈이 펑펑 쏟아지는 추운 겨울날, 개미집을 향한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고 양식을 준비했기 때문에 겨우내 걱정 없이 편하게 지내는데 베짱이는 개미에게 구걸하는 모습의 그림이다. 허리가 구부정한 베짱이의 몰골이 처량한 삽화가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린 생각에도 베짱이는 여름동안 열심히 일해서 먹을 것을 많이 모아두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노래와 춤만 추며 놀기만 하는 것은 나쁜 짓이라 확신했으며, 사람도 훗날을 위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공부하고 저축도 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영국의 격언에는 ‘일할 때는 일하고 놀 때는 놀아라’하는 말이 있다. 공부할 때나 일할 때 그리고 놀 때의 구분을 분명히 하라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일은 어디까지이고 놀이는 어디까지인지 혼동이 되었으며, ‘일’이라는 것을 왜 해야 하는지를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오늘날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는 정반대의 이야기로 발전했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고 배짱이는 노래만 부르고, 노는 것은 동일한데 개미는 단순한 노동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적은 수입인 반면, 배짱이는 여름에 즐겁게 부른 노래 판권으로 연중 사계절 많은 수입을 올려 결국 개미를 크게 도와 준다는 것이다.
영어의 ‘워크(Work)’나 독일어의 ‘아르바이트(Arbeit)’는 ‘일’의 뜻으로도 ‘공부’의 뜻으로도 쓰인다. 그러나 한국어의 ‘일’에는 ‘공부’라든가 작품(作品)이라는 뜻은 없는 것 같다. 오로지 육체노동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놀이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생각은 그리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 민족은 본래 낙천적 기질이 강하여 가무와 음곡을 즐겼다. 가난한 살림 가운데서도 때때로 놀이를 즐기며 시름을 잊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 서민층이 춤과 노래로 시름을 달랬다면 사대부 계층은 화조(花鳥)와 풍월(風月) 그리고 시서(詩書)로 풍류를 즐겼다.
놀이 가운데서도 주색(酒色)과 잡기(雜技)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이 강했다. 그러한 부류의 놀이는 패가와 망신의 위험성을 가진 것으로 경계하였으니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여 수렁에 빠진 사람들도 많았다. 도박을 ‘노름’이라고 불렀다는 사실도 그것을 놀이의 한 종류로서 즐긴 사람들이 많았음을 암시하는 말의 쓰임이 아닐까 한다.
일과 놀이를 흑백으로 구분하듯이 단순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일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어쩌면 많은 경우에 일과 놀이는 한데 어루러져 있으며 또 그렇게 어우러짐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일인 동시에 놀이이고 놀이인 동시에 일이기도 하다. 스포츠니 각종 운동경기 등은 본래 ‘놀이’로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운동경기로 돈을 벌어서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 또는 그 제도가 생기면서 스포츠도 ‘일’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예술에 있어서도 놀이의 요소가 전혀 없는 순전한 고역으로서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며, 또한 일의 요소가 전혀 없는 순수한 즐거움에만 도취하여 활동을 하는 사람도 적을 것이다. 비록 직업적인 예술가나 운동선수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며 그 일에 종사할 것이고, 비록 오락 또는 취미로서 즐기는 예술이나 스포츠의 경우라 하더라도 다소는 힘드는 ‘일’로서 받아들일 것이다.
예향으로 알려진 우리 지역은 훌륭한 문화자산을 이용하여 지역문화예술 놀이(행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녹록치 않다. 일회성 지역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고 전국적 미래지향적 놀이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다 창의적이고, 치밀한 계획과 지원이 요구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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